728x90

2024/03/17 5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우리의 기록, 인류의 기억 특별전) (2024.02.2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우리의 기록, 인류의 기억 특별전) (2024.02.21) 정의 조선시대 왕실 도서관이면서 학술 및 정책을 연구한 관서. 내용 1776년(정조 즉위년) 3월, 궐내에 설치되었다. 역대 왕들의 친필·서화·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 등을 관리하던 곳이었으나 차츰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해 갔다. 조선 세조 때 양성지(梁誠之)의 건의로 일시 설치되었으나 폐지되었다. 1694년(숙종 20)에 세조가 친히 쓴 ‘奎章閣(규장각)’이라는 액자를 종정시(宗正寺)의 환장각(煥章閣)에 봉안하고 역대 국왕의 어필·어제를 보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군주의 권위를 절대화시키는 규장각의 설치를 유신들이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 정조가 즉위하면서 외척 및 환관들의..

박물관,미술관 2024.03.17

(국보 제151-6호) 조선왕조실록 낙질 및 산엽본

(국보 제151-6호) 조선왕조실록 낙질 및 산엽본 국보인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기타산엽본이라 일컬어지는 본으로 정족산, 태백산, 오대산의 사고에 있던 것이 아닌 그 밖의 낙질본을 모은 것이다. 1973년 12월 31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낙질본(落帙本: 완질본 중 중간에 몇 권이 빠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 대까지 25대 왕의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책이다. 완질은 총 1,893권 88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왕실은 《조선왕조실록》을 전란과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여러 장소에 나누어 설치한 사고(史庫: 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과 병..

대한민국 국보 2024.03.17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조선 세종(世宗)이 1446년(세종 28) 9월에 제정·공포한 한국의 문자. '정음(正音)'이라고도 하며, 속칭 '언문(諺文)'이라고도 하였다. 글자로서 훈민정음이 완성된 것은 1443년(세종 25)이며, 나라의 글을 창제한 목적을 실천하기 위하여 금중(禁中)에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의 해례(解例)와 같은 원리를 연구하게 하고, 그 보급책의 일환으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짓고 운서(韻書)를 번역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공포하였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의 뜻이며(訓民正音諺解), '정음'은 '우리나라 말을 정(正)히, 반드시 옳게 쓰는 글'임을 뜻한다(釋譜詳節序). 훈민정음 제정에 관해서는 정인지(鄭麟趾)를 비롯하여 당시 집현전(集賢殿) ..

대한민국 국보 2024.03.17

(국보 제306-2호) 삼국유사

(국보 제306-2호) 삼국유사 1512년 경주에서 간행된 정덕본(正德本) 삼국유사. 2003년 4월 14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2002년 10월 19일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4월 14일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고려 후기의 고승 일연(一然)이 1281년(충렬왕 7)에 편찬한 역사서로, 1512년(중종 7) 경주에서 간행된 정덕본(正德本)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과 권제1∼권제5까지 5권을 2책으로 묶은 것으로, 권별로는 15장, 권1 37장, 권2 49장, 권3 56장, 권4 31장, 권5 30장, 발문(跋文) 1장으로 모두 219장이다. 체재와 내용은 권1에 과 제1, 권2에 제2, 권3에 과 , 권4에 , 권5에 와 ·· 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은 간략한 연표이며, 편은 ..

대한민국 국보 2024.03.17

(국보 제319-3호) 동의보감

(국보 제319-3호) 동의보감 1610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이 저술한 의학서적 《동의보감》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다. 2015년 6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610년(광해군 2) 허준이 저술한 의학서적이다.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 의학 집대성하여 하나의 책으로 편찬한 성과이다. 1596년(선조 29) 당시 궁중 내의였던 허준은 정작, 양예수, 김응탁, 정예남, 이명원(李命源)과 함께 《동의보감》 편찬에 착수했다. 그러나 1년 뒤인 1597년 정유재란의 발발로 인해 편찬사업이 중단되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허준이 홀로 책의 편찬을 마무리 짓기 시작하여 1610년(광해 2)이 되어서야 편찬사업이 일단락 되었다. 이후 1613년(광해 5) 내의원에서 최종적으로 내의원자(內..

대한민국 국보 2024.03.17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