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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47

서울 칠궁 (2022.10.31)

서울 칠궁 (2022.10.31)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 왕들의 생모 7인 신위를 모신 사당. 사묘. 사적 149호. 내용 역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이의 생모인 일곱 후궁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면적 27,150㎡. 이곳은 원래 1725년(영조 1) 영조가 생모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신위를 모시고 숙빈묘(淑嬪廟)라 하다가 뒤에 육상묘(毓祥廟)로 바꾸었으며, 1753년 육상궁(毓祥宮)으로 개칭된 곳이다. 그 뒤 1882년(고종 19) 불타 없어진 것을 이듬해 다시 세웠다. 1908년 저경궁(儲慶宮)·대빈궁(大嬪宮)·연호궁(延祜宮)·선희궁(宣禧宮)·경우궁(景祐宮) 등 5개의 묘당을 이곳으로 옮겨 육궁이라 하다가 1929년 덕안궁(德安宮)도 옮겨와서 칠궁이라 하였다. 칠궁은 ..

궁궐 2022.11.02

수원 화성행궁 (2021.11.26)

수원 화성행궁 (2021.11.26) 정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능행할 목적으로 건립한 궁궐. 사적. 개설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행궁은 왕이 궁궐 밖을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무는 궁궐을 지칭한다. 화성행궁은 화성 안에 건축된 행궁으로, 정조가 융건릉에 능행할 목적으로 건축하였다. 내용 화성행궁의 규모는 전체 557칸으로 다른 행궁에 비해 현저히 크며 정조 20년(1796) 화성 축조와 함께 지어졌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에 행차할 때 머물기 위한 처소로 마련된 것이지만 평상시에는 수원부 치소로 사용되었다. 행궁은 전체적으로 앞쪽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동향으로 배치되었다. 정면 중앙에는 약간 안으로 들여 정문인 신풍루(新豊樓)가 있고 중..

궁궐 2022.09.14

서울 운현궁 (2021.09.03)

서울 운현궁 (2021.09.03)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60에 있는 조선시대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궁궐. 사적. 개설 1977년 사적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운현궁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私邸)이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그의 본궁이 되어 궁의 명칭이 붙은 곳이다. 내용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흥선군의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이다. 흥선군의 사저였을 때 운현궁의 위치는 창덕궁과 경복궁의 중간 부근으로 지금의 운현궁과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자리에 해당된다. 원래 운현궁은 현재의 덕성여자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양관(..

궁궐 2022.09.04

경희궁 (2021.05.02)

경희궁 (2021.05.02)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조선후기 왕의 피우(避寓)를 위한 이궁으로 건립된 궁궐. 내용 본래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렸다. 처음 창건 때는 유사시에 왕이 본궁을 떠나 피우(避寓)하는 이궁(離宮)으로 지어졌으나, 궁의 규모가 크고 여러 임금이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동궐인 창덕궁에 대하여 서궐이라 불리고 중요시되었다. 이 궁이 창건된 것은 1617년(광해군 9)으로, 당시 광해군은 창덕궁을 흉궁(凶宮)이라고 꺼려 길지에 새 궁을 세우고자 하여 인왕산 아래에 인경궁(仁慶宮)을 창건하였다. 그런데 다시 정원군(定遠君)의 옛 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술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궁을 세우고 경덕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이 궁에 들지 못한 채 인조반정으로 왕..

궁궐 2022.08.25

창경궁 (2020.07.23)

창경궁 (2020.07.23)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에 있는 조선전기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 사적. 개설 사적 제123호. 창경궁은 조선 9대조 임금인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이다. 내용 창경궁 터의 역사는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이 즉위한 1418년 고려의 남경(南京) 이궁(離宮) 터에 상왕 태종을 위한 수강궁(壽康宮)을 세운 것이다. 성종은 창덕궁이 좁아 세 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 보완하면서 공사 도중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경궁은 창건 초기에는 쓰임새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후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離宮)으로서 활용 빈도가 높아졌다. 창경궁의 전각은 영건, 화재, 훼손 등으로 인하여 변화하였으며, 변화에 따..

궁궐 2020.07.26

창경궁 (2020.05.19)

창경궁 (2020.05.19)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에 있는 조선전기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 사적. 개설 사적 제123호. 창경궁은 조선 9대조 임금인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이다. 내용 창경궁 터의 역사는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이 즉위한 1418년 고려의 남경(南京) 이궁(離宮) 터에 상왕 태종을 위한 수강궁(壽康宮)을 세운 것이다. 성종은 창덕궁이 좁아 세 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 보완하면서 공사 도중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경궁은 창건 초기에는 쓰임새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후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離宮)으로서 활용 빈도가 높아졌다. 창경궁의 전각은 영건, 화재, 훼손 등으로 인하여 변화하였으며, 변화에 따..

궁궐 2020.05.19

종묘 (2020.05.06)

종묘 (2020.05.06)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 정전·태묘 내용 사적 제125호. 종묘는 원래 정전(正殿)을 말하며,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태묘는 태조의 묘(廟)가 있기 때문이다. 역대 왕과 왕후는 사후에 그 신주를 일단 종묘에 봉안하였다. 공덕이 높아 세실(世室 : 종묘의 神室)로 모시기로 정한 제왕 이외의 신주는 일정한 때가 지나면 조묘(祧廟)인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겨 모셨다. 이것을 조천(祧遷)이라고 한다. 종묘 즉 정전에는 현재 19실(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의 신주를 모셔놓고 있다. 정전 서쪽에 있는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그리고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의 신주를 ..

궁궐 2020.05.06

[조선궁궐] 경복궁 (2020.04.23)

[조선궁궐] 경복궁 (2020.04.23)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되어 정궁으로 이용된 궁궐. 정궁. 사적. 개설 사적 제117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연원 및 변천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와 행랑·근정문·천랑(穿廊)·각루(角樓)·강녕..

궁궐 2020.04.23

덕수궁 벚꽃 (2020.04.03)

덕수궁 벚꽃 (2020.04.03) 정의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 사적. 개설 덕수궁은 처음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德壽宮)이라 다시 바꾸었다. 1897년(광무 1)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하여 정관헌, 돈덕전,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준명전, 흠문각, 함녕전, 석조전 등 많은 건물들을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이곳은 고종의 재위 말년의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되었던 장소로, 궁내에 서양식 건물이 여럿 지어진 것이..

궁궐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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