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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지방문화재 52

남원 광한루원 (2024.03.20)

남원 광한루원 (2024.03.20)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조선전기 에 조성된 광한루의 정원. 누원. 명승. 개설 남원역 근처의 시내에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가 있고, 그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통칭하여 광한루원(廣寒樓園)이라고 한다.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6만 9795㎡. 역사적 변천 지금의 광한루는 1170년(의종 24) 전중감(殿中監)이었던 황공유(黃公有)가 무신의 난으로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온 뒤, 그의 후손 황감평이 이곳에 일재(逸齋)라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때부터 유래된다. 광한루의 시초는 조선 세종 원년(1419) 황공유의 아들인 황희(黃喜)가 한때 남원에 유배되었을 당시, 일재의 옛터에 광통루(廣通樓)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긴 것에..

익산 왕궁리 유적 (2023.05.31)

익산 왕궁리 유적 (2023.05.31)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백제의 궁터 유적. 1998년 9월 1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백제 후기 궁궐의 구조와 기능, 축조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전북 익산 용화산 남측 끝자락의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삼국사기》, 《관세음응험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대동지지》, 《전라도읍지》, 《금마지》 등의 문헌에 마한 또는 백제 무왕, 보덕국 안승 또는 후백제 견훤의 왕궁이 있었다는 각기 다른 기록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하지만 1989년부터 30년 넘게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백제 후기 무왕(재위 600∼641) 때 조성된 궁성의 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정기간 궁으로 사용되다 백제 말~신라 초에 그 터에 탑, 금당(부처를..

익산 미륵사지 (2023.05.31)

익산 미륵사지 (2023.05.31)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있는 삼국시대 에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의 사찰터. 사적 제150호. 개설 196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미륵사지는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년(백제 무왕 2)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동양 최대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1974년 8월 원광대학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때 동탑지(東塔址)도 발견되었다. 건물지(建物址)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구(遺構)가 복합되어 있다. 역사적 변천 미륵사는 ..

보길도 윤선도원림 (2023.05.02)

보길도 윤선도원림 (2023.05.02) 정의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윤선도 관련 원림. 정원. 명승 제34호. 내용 2008년 사적 보길도윤선도유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월 8일 보길도윤선도원림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명승으로 재지정되었다. 지정구역 8만 1,745㎡. 보호구역 39만 8,983㎡. 보길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32㎞, 해남반도의 남단에서는 12㎞ 떨어진 외딴섬이다. 이 섬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격자봉(格紫峰)을 중심으로 하여 동북 방향으로 아름다운 계류가 흐르고 있는데, 윤선도는 이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이 일대에 정사(亭舍)와 연못을 축조하여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였다. 1637년(인조 15) 2월윤선도가 51세 때 처음으로 보길도를 찾아 입구에..

보길도 동천석실 (2023.05.02)

보길도 동천석실 (2023.05.02) 동천석실은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세상으로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있다. 3,306m²(1,000여평)의 공간에 한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지었던 곳이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칭하였다. 지금도 석실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인용, 한국관광공사) 동천석실 동천석실 현판 동천석실 석담과 희황교,동천석실 동천식설에서 보는 파노라마 차바위 침실과 낙서재,곡수당 방향의 모습 용두암 침실과 윤선도원림방향 차바위와 낙서재..

보길도 곡수당 (2023.05.02)

보길도 곡수당 (2023.05.02) 고산의 아들 학관이 거주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조성한 공간으로, 낙서재 골짜기에서흐른 물이 이곳 인근에 이르러서 곡수를 이루고 있다. 1칸짜리 집으로 사방에 퇴를 달로 반자를 두었으며, 남쪽 난간에는 취적헌, 서쪽은 익청헌이라는 편액을 학관의 글씨로 새겼다. 주변에 일삼교와 유의교가 있다. 곡수당 곡수당 서재 곡수당 곡수당 유의교 상연지 상연지 상연지와 곡수당 서재 서재와 일삼교 일삼교 곡수당의 모습 유의교 곡수당 주변의 유채꽃

보길도 낙서재 (2023.05.02)

보길도 낙서재 (2023.05.02)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의 유적.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은거하면서 머물렀던 집으로 1671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당시 집은 초가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복원되어 팔작지붕 기와로 지어져 있다. 남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자형 구조의 집에 사방으로 툇마루를 내어 주변환경을 쉽게 바라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마주보는 언덕에는 윤선도의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며 사색하는 공간으로 쓰였다는 동천석실이 있다. 2011년에는 《고산유고(孤山遺稿)》와 《보길도지(甫吉島識)》에 나오는 윤선도가 달(月)을 감상하는 장소로 사용한 귀암(龜巖)으로 추정되는 돌이 낙서재 앞마당에 있다. [樂書齋] (두산백과 인용) 낙서재의 모습 귀암과 낙서재 동와 귀암 낙서재 낙서재 ..

정읍 무성리 삼층석탑 (2023.04.27)

정읍 무성리 삼층석탑 (2023.04.27)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1998년 1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1998년 1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려 후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신계리 마애불, 만복사지 석불입상 등과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단층으로 축소된 기단과 옥개석의 층급 받침이나 우주 등의 표현이 형식화한 고려시대의 양식을 볼 수 있다. 옥개석의 반전이나 낙수면의 처리, 얇은 옥개석 등에서 지역적 특성도 발견된다. 탑의 기단부는 단층 기단이며, 초층 탑신은 기단보다 높이가 높다. 2, 3층 탑신은 폭과 높이의 비례가 정연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탑의 넓이에 비하여 높은 편이다. 옥개석에는 3단의 받침이 있고, 끝부분은 전체적으로 ..

김제 청도리 삼층석탑 (2023.04.17)

김제 청도리 삼층석탑 (2023.04.17)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위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와 가까운 밭 가운데에 있는데, 밭은 나주나씨 종중의 소유이다. 형태 청도리삼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3.1m이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전체가 4매석으로 되어 있으며 면석 부분 각 면에 2구씩의 안상(眼象)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층 기단에는 장식적인 요소 없이 일반적인 석탑 기단 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신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몸돌에도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린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크기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고 ..

김제군 관아와 향교 (2023.04.17)

김제군 관아와 향교 (2023.04.17)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시대 김제군의 동헌과 내아 등의 관청. 향교. 사적. 개설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김제향교는 김제시 성산공원 남쪽에 있으며 향교의 동쪽 130m 지점에는 김제관아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김제관아에는 수령이 업무를 보는 동헌(東軒)과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內衙), 누정인 피금각(披襟閣), 관리사가 남아 있다. 그리고 김제향교에는 대성전과 명륜당을 비롯하여 동·서무, 동·서재, 만화루가 잘 남아 있다. 역사적 변천 김제향교는 1404년(태종 4)에 창건하였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한동안 중건되지 못하다가 1635년(인조 13)에 장수향교를 참고하여 재건하였다. 명륜당은 1842년(헌종 8)과 1879년(고종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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