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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지방문화재 33

강화 초지진 (2021.05.03)

강화 초지진 (2021.05.03)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조선후기 해상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구축한 진지. 국방유적·고지명. 사적. 개설 197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1716년(숙종 42) 강화 해안을 지키기 위해 조직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적지이기도 하다. 내용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강화부지(江華府志)』에 따르면 1716년에 설치되었으며, 1726년(영조 2)에 진장(鎭將)으로 종4품 무관인 병마만호(兵馬萬戶)가 배치되었다. 1763년에는 진장을 종3품 무관인 첨사(僉使)로 승격시켰다. 군관(軍官) 11인, 사병 98인, 돈군(墩軍) 18인, 목자(牧子) 210인을 배치했고, 진선(鎭船) 3척을 두었다. 초지돈(草芝墩)·장자평돈(長者坪..

강화 고대섭 가옥(강화 솔정리 고씨가옥) (2021.01.19)

강화 고대섭 가옥(강화 솔정리 고씨가옥) (2021.01.19)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에 있는 가옥. 2006년 5월 15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평면이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 반가형 99칸 가옥이다. 1941년 건립하였으며 면적은 1,479㎡이다. 담장은 사고석으로 둘렀고, 정면과 왼쪽·오른쪽 3면에 문을 내었는데, 정문은 1칸 규모의 솟을대문이다.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와 행랑채 사이 트인 곳에 중정을 드나드는 출입구를 두었으며, 반루 기둥 위에 겹처마를 사용하였다. 일본식 가옥처럼 행랑채 끝에 다실을 갖추고 있으며, 건물 내부에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복도를 각각 별도로 마련해 놓았다. 민가로서는 규모가 매우 크고, 전통적인 한옥에 일본식 건축양식을 혼합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강화 석수문 (2020.12.15)

강화 석수문 (2020.12.15)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후기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된 문(門). 수문(水門). 시도유형문화재. 내용 199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수문의 길이 10m, 높이 3.8m, 너비 4m. 세 개의 수문으로 되어 있는데, 각 수문은 화강석을 다듬은 선단석(扇單石)을 4단 내지 5단으로 쌓아 이를 교각으로 삼고, 그 위에 매끄럽게 다듬은 월단석을 반원형으로 잇대어서 아치를 이루게 하였다. 아치와 아치 사이도 역시 다듬은 무사석으로 메워 올려서 아치석 윗돌과 평평하게 한 다음, 그 위에 흙을 깔았다. 원래 이 수문은 1709년(숙종 35)에 강화 내성(內城)을 쌓을 때, 남문 옆 성곽과 연결해서 강화읍의 중심부를 질러 흐르는 동낙천(東洛川..

강화 충렬사 (2020.08.24)

강화 충렬사 (2020.08.24)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에 있는 조선후기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충신들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시도유형문화재. 내용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1641년(인조 19)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金尙容), 공조판서 이상길(李尙吉), 장령 이시직(李時稷), 돈녕도정 심현(沈誢), 천총(千摠) 구원일(具元一)을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강화도 내의 유생과 유수부(留守府)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건립되었다. 김상용이 살았던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仙杏里)에 위치해 있으며 1658년(효종 9)에 사액되었다. 건립 때 6인을 제향했으나, 이들과 함께 순절하고도 입향(入享)되지 못한 인물의 후손들의 호소로 1657년에 훈련정 황선신(黃善身), 훈련첨정 강흥업(康..

강화 갑곶순교성지 (2020.08.17)

강화 갑곶순교성지 (2020.08.17)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에 있는 천주교도의 순교성지이다.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삼아 1871년 군함을 앞세우고 강화도 해역을 침범한 신미양요(辛未洋擾)가 일어난 후 대원군은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미국 군함이 물러간 후 고종은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교서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미국 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등이 제일 먼저 잡혀 갑곶진두(갑곶나루터)에서 목이 잘려 효수되었다. 천주교 인천교구는 문헌상에 나와 있던 갑곶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그 터를 매입한 후 2000년에 순교성지로 조성하였고, 2001년 9월에는 순교자들의 행적을 증언한 박순집의 묘를 이장하였다. ..

용진진,좌강돈대 (2020.08.17)

용진진,좌강돈대 (2020.08.17)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진(鎭).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군사적 요새로 조선시대인 1656년(효종 7)에 축조되었다. 가리돈대(加里墩臺)·좌강돈대(左岡墩臺)·용당돈대(龍堂墩臺) 등 3개의 돈대를 관할하였으며 돈군과 군보급품을 관리하였다. 용진진은 본래 병마만호(兵馬萬戶)의 관리 아래 있었고 군관 24명, 사병 59명, 진군 18명 등 모두 101명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포를 놓는 자리인 포좌 4문, 총을 놓는 자리인 총좌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석축 대부분이 없어지고 홍예 2문만이 남아 있었던 것을 1999년에 문루를 복원하였다. 왼..

화도돈대 (2020.08.17)

화도돈대 (2020.08.17)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국방 유적.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병자호란 후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어영군(御營軍) 2,000여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군(僧軍) 8,000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강화도의 돈대는 53개 중 49개가 병자호란 43년 후인 숙종 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때 성곽이나 변방 요지에 세워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련한 초소인 돈대는 일반적으로 주변보다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구릉을 ..

강화 외성 (2020.08.17)

강화 외성 (2020.08.17)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에 있는 고려후기 강도시기에 축조된 토축 성곽. 산성. 사적. 개설 강화외성(江華 外城)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성으로, 강화군 동해안(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일대에 걸쳐 있다. 역사적 변천 고려는 1232년(고종 19) 6월 몽골군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로 천도하면서 궁궐을 짓고 도성(都城)을 축조하였다. 다만 이 때 왕궁과 도성 시설을 모두 갖추지는 않고, 1234년 1월부터 송도(松都)의 것과 비슷하게 도성과 궁궐, 각 관청을 건립하였다. 강화 외성의 경우, 1233년(고종 20)부터 축조한 성으로 그 길이가 약 23㎞(적북돈대∼초지진)에 이르는 ..

초지진 (2020.08.17)

초지진 (2020.08.17)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조선후기 해상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구축한 진지. 국방유적·고지명. 사적. 개설 사적 제225호. 1716년(숙종 42) 강화 해안을 지키기 위해 조직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적지이기도 하다. 내용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강화부지(江華府志)』에 따르면 1716년에 설치되었으며, 1726년(영조 2)에 진장(鎭將)으로 종4품 무관인 병마만호(兵馬萬戶)가 배치되었다. 1763년에는 진장을 종3품 무관인 첨사(僉使)로 승격시켰다. 군관(軍官) 11인, 사병 98인, 돈군(墩軍) 18인, 목자(牧子) 210인을 배치했고, 진선(鎭船) 3척을 두었다. 초지돈(草芝墩)·장자평돈(長者坪墩)·섬암돈(蟾巖墩)이..

후애돈대 (2020.08.17)

후애돈대 (2020.08.17)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 1995년 11월 15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95년 11월 15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숙종 5년(1679년)에 축조한 강화도의 53개 돈대 중 하나로 화강암을 정사각형으로 쌓아 축조하였으며, 안에는 4개의 포좌가 설치되어 있다. 동검북(東黔北)와 함께 선두보(船頭堡 )에 소속되어 있다. 이 돈대를 훼손하면 화를 입는다는 전설이 인근 마을에 전해지고 있고, 부락을 수호해주는 신단으로 보호되어왔다. 강화 53돈대 중 유일하게 일부가 남아 있었으며 1998년에 완전 복원하였다. 돈대란 경사면을 절토(切土)하거나 성토(盛土)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으로 받친 부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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