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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9 20

(보물 제2239호)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

(보물 제2239호)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금제 허리띠. 2023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어린 남성용 금제 허리띠로, 원래는 가죽이나 천과 결합된 형태였으나 오랜 시간을 거치며 천과 가죽은 삭아 없어지고 현재는 금제 장식만이 남아 전하고 있다. 경주 금령총 금령총은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신라의 고분으로, 무덤의 피장자는 어린 왕족 남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의해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 이외에도 금령총 금관(국보),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등 당시 신라의 부장품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다. 내용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목관 안에서 피장자의 허..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보물 제949호) 예념미타도량참법

(보물 제949호) 예념미타도량참법 요약 『예념미타도량참법』은 불교의례서로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손부인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韓氏)가 죽자 명복을 빌고 아울러 먼저 죽은 세종·소헌왕후(昭憲王后)·세조·의경대왕(懿敬大王)·예종을 추모하기 위해 간행하였다. 『예념미타도량참법』은 1474년(성종 5)부터 1614년(광해 6)까지 11차례 간행되었다. 정의 조선 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4년에 간행한 불교 의례서. 내용 『예념미타도량참법』은 세조의 비인 자성대왕대비(慈聖大王大妃)가 손부인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韓氏)가 죽자 명복을 빌고 아울러 먼저 죽은 세종 · 소헌왕후(昭憲王后) · 세조 · 의경대왕(懿敬大王) · 예종에 대한 추앙의 정을 잊을 수 없어 간행하였..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보물 제1496호) 윤급 초상

(보물 제1496호) 윤급 초상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윤급(尹汲)의 초상화. 개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윤급은 조선 후기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평, 호는 근암(近菴)이며, 영의정을 지낸 윤두수(尹斗壽)의 5세손이다. 1725년(영조 1) 문과에 급제한 후 형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하여 자주 파직되었으나 의로운 주장이었기 때문에 곧 서용되곤 했다. 특히 글씨에 뛰어나 독특한 서체를 이룩하였다. 이 초상은 쌍학흉배(雙鶴胸背)와 서대(犀帶)를 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윤급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지내 1품에 오른 1762년(영조 38) 66세 무렵에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오세창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변상벽(卞相璧)이 윤급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 1719년(숙종 45)에 열린 기사(耆社)의 계회에 참석한 기신(耆臣)의 초상과 계회를 그린 그림. 2019년 3월 6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87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3월 6일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1첩 50면이고, 지본담채(紙本淡彩)이다. 크기는 52×36cm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김진여(金振汝) · 장태흥(張泰興) · 박동보(朴東普) · 장득만(張得萬) 등이며, 글씨를 쓴 사자관(寫字官, 또는 書寫官)은 이의방(李義芳)이다. 숙종 때 모두 12부를 만들었는데, 소재가 확인된 것은 이것 외에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홍기준(洪起駿) 소장본, 삼성미술관리움 소장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등이다. [Gisa gyecheop (Album..

대한민국 국보 2024.03.19

(보물 제1923호) 정조 어찰첩

(보물 제1923호) 정조 어찰첩 요약 『정조 어찰첩』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6년(정조 20)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6일까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책이다. 6첩, 필사본. 총 297편으로 글자수는 5만 2천여 자이다. 정조의 어찰은 공식적인 사료의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정조의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의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 제작 및 발급 경위 정조가 재위 말년에 해당하는 1796년(정조 20)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6일까지 심환지(沈煥之)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책이다. 수신자는 삼청동문(三淸洞門), 단규..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보물 제1509호) 허목 초상

(보물 제1509호) 허목 초상 정의 조선 중기 학자이자 문신인 허목(1595-1682)의 초상화. 개설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허목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문보(文甫), 또는 화보(和甫)이고, 호는 미수(眉叟)이다. 벼슬은 우의정까지 올랐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그는 당시 학계에서 대현(大賢)과 영수로서 깊이 추앙을 받았으며, 평생 몸가짐이 고결하여 세속을 벗어난 기품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전서에 능하였으며, 그림과 문장에도 뛰어났다. 「허목초상」은 화폭 상부에 제발문이 붙어 있어 그 제작동기를 말해준다. 1794년(정조18) 정조는 허목에 크게 감동하여 채제공(蔡濟恭)으로 하여금 초상화 제작을 사림(士林)들과 의논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 해 7월 은거당(恩居堂 : 1678년..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보물 제590호) 강세황 초상

(보물 제590호) 강세황 초상 정의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초상화. 내용 197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강세황이 직접 그린 자화상과 이명기(李命基)가 그린 초상화 2점이다. 이 중 이명기가 그린 강세황 초상(보물, 1975년 지정)은 국립중앙박물관 기탁품이다. 자화상은 검은색 오사모(烏紗帽)에 짙은 옥색 도포 차림을 한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이다. 이러한 특이한 차림새에 대한 해답은 화면 상부에 적힌 자필의 찬문에서 얻을 수 있다. 즉 오사모를 쓰고 야복(野服)을 입은 것은 곧 마음은 산림(山林)에 있으나 이름은 조적(朝籍)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얼굴 표현은 육리문(肉理文)에 따라 드러나지 않게 처리했다. 그리고 오목한 부위는..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보물 제1189-2호) 박문수 초상

(보물 제1189-2호) 박문수 초상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박문수 초상화. 개설 이 작품은 흔히 조선 시대 어사(御使)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영성군 박문수(靈城君 朴文秀, 1691~1756)의 초상화이다. 박문수는 38세 때인 1728년의 분무공신 녹훈(奮武功臣 錄勳) 때 분무공신상(奮武功臣像)을 하사받았으며, 이때 공신상으로 그려진 전신상(全身像)과 반신상(半身像)이 천안의 후손가에 전해져 1994년에 2점 모두 보물 제1189호로 지정되었다. 박문수 초상화는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189-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박문수 초상(2006)은 반신상으로 전체 크기가 세..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보물 제1189-1호) 박문수 초상

(보물 제1189-1호) 박문수 초상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박문수의 초상화. 개설 199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2폭. 1728년(영조 4)경 작. 비단바탕에 채색. 대본 : 세로 163.5㎝, 가로100㎝, 소본(1) : 세로 59.9㎝, 가로 45.3㎝. 박문수 초상 1점(소본(2))이 2006년에 보물로 추가 지정되었다. 암행어사의 일화로 유명한 박문수의 영정이다. 박문수는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으로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내용 현재 종손가에 전해오는 박문수 초상은 대본과 소본 2점이며, 그 중 대본은 분무공신상(奮武功臣像)으로서, 공신상의 전형적 형식을 보여 준다. 박문수는 그의 나이 38세 때인 1728년 분무공신(奮武功臣)에 녹훈(錄勳)..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보물 제715호) 김중만 초상

(보물 제715호) 김중만 초상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김중만을 그린 초상화. 내용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김중만은 1712년 무과에 급제한 뒤 1728년 3월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한 무신으로, 공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工曹判書兼五衛都摠府都摠管),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를 지냈다. 김중만의 무공을 높이 상찬한 영조의 어명으로 그려진 초상이다. 대본은 오사모단령(烏紗帽團領)의 정장관복을 하고 공수자세를 취한 전신좌상이다. 쌍학문양(雙鶴紋樣)의 흉배, 학정금대(鶴頂金帶)는 문관 종2품 때의 도상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1728년경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책봉된 뒤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을 때 그려진 초상화로 추정된다. 형식은 권희학(權喜學), 조문명(趙文命) 등 당시의 ..

대한민국 보물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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