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및여행/유럽여행사진(2004년)

프랑스 여행사진 2 (2004년)

산을 오르다. 2004. 11. 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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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사진 2 (2004년)

 

호텔주위 산책중

 

 

호텔주위 산책중

 

 

파리 월드컵 스타디움
-98년 프랑스가 주최국으로서 월드컵 우승시 결승경기가 열렸던 장소

 

 

오페라 가르니에(L'Opera Garnier)
나폴레옹 3세의 명으로 샤를 가르니에가 1875년 건축한 것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코린트식 기둥. 청동색의 화려한 돔. 유명 음악가의 흉상. 이탈리아 양식의 오페라 홀을 가득 메운 그림/조각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바스티유 오페라가 생기기 전까지는 여기에서 오페라가 공연됐지만 지금은 발레 전용관으로 쓰이고 있다. 1,900여개의 좌석이 있으며 오페라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방돔 광장(Place Vendome)
망사르가 루이 14세의 기마상을 설치하기 위해 17세기말에 만든 광장.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 당시 기마상이 철거되고, 1810년 그 자리에 나폴레옹의 오스테를리츠 전투 승전 기념탑이 세워졌다. 이 탑은 노획한 1,200여개의 대포를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 입장권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나폴레옹의 그림이 보임)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

 

 

카루젤 개선문(L'arc de triomphe du Carrousel)
나폴레옹이 오스테를리츠 전투의 승리를 자축하며 1808년에 세웠다. 로마의 개선문을 본따서 만들었으며 기둥에는 나폴레옹의 승전을 묘사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 라 데팡스의 개선문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카루젤 개선문을 배경으로

 

 

카루젤 개선문을 배경으로

 

 

카루젤 개선문을 배경으로

 

 

카루젤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13세게에 세운 요새였다. 이후 샤를 5세가 거처하면서 왕궁이 됐고 프랑수와 1세 때 왕실 소유 미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이어 까뜨린 메디치가 튈르리 궁전과 센강 남쪽 갤러리 공사를 시작했고 나폴레옹 3세가 1852년에 북쪽 갤러리를 완성하면서 오늘날 루브르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 계획으로 전시관이 확장되고, 1989년에는 박물관 앞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우면서 대변신을 하게 된다. 이 계획을 놓고 루브르의 고풍스러움을 해친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유리 피라미드의 차가운 철골과 섬세한 유리의 느낌이 고전과 현대를 절묘하게 융합시켰다는 훌륭한 평을 듣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엄청난 규모의 궁전이 박물관으로 바뀌면서 나폴레옹은 원정국에서 약탈한 예술품으로 이곳을 채워감과 동시에 해외 예술품의 대대적인 매입을 병행했다. 덕분에 다양한 국적의 예술품이 루브르의 창고를 가득 메웠고 계몽사상사의 주장에 힘입어 일반에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루브르 박물관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225개 전시실에는 그리스. 이집트. 유럽의 유물, 왕실 보물, 조각, 회화 등 40여만 점의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의 내부

 

 

루브르 박물관 내부

 

 

모나리자(La Joconde)
너무나 잘 알려진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작품. 신비로운 미소의 눈썹 없는 모델은 죠꽁드 부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만년에 제작한 (세레자 요한)의 미소와 너무 비슷해 모델이 남자라는 설도 끊이지 않는다.

 

 

루리 14세(야생트 리고)

 

 

(장 클루에)-16세기 이전의 미술품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대관식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e Guidant le Peuple)
1830년 왕정복고에 반대하던 시민들이 부르봉 왕가를 몰아낸 역사적 사건, 7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 들라크루아의 작품이다.
들라크루아는 전통 테크닉을 거부하고 보색을 인접시켜 표현함으로써 다이내믹하고 격정적인 공간을 연출했으며,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군중의 모습에 삼각구도를 도입해 한 공간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의 그림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자크 루이 다비드)

 

 

루브르 박물관 내부의 그림

 

 

메두사의 뗏목(테오도르 제리코)

 

 

 

 

 

 

 

 

사모트라스의 승리의 여신상
B.C. 190년경
파로스섬의 대리석
높이 275cm
1863년 사모트라케 출토

< 사모트라스의 승리의 여신상> 혹은 <니케상> 으로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이 조각은 1863년 에게해에 있는 한 섬, 사모트라케에서 발견되었다. (프랑스 박물관에 있는 유물이므로 프랑스 식 명칭을 사용하여 사모트라스로 불린다) 작품의 머리와 두 팔은 원래부터 조각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파손되어 사라진 것이다. 1950년에는 조각의 오른손이 발견되었고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에 있는 손가락들이 이 작품의 것들로 판명되어 현재 별도의 유리 상자에 넣어져 조각 작품 곁에 전시되고 있다. 오른쪽 날개 역시 사라져 버렸고 훗날 석고로 복제하여 붙인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의 헬레니즘을, 특히 페르가몬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가 죽은 이후의 헬레니즘 말기를 대표하는 작품인 이 조각은 우선 그 힘있게 비상하는 움직임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또 비록 원래의 작품에 있었던 것이 없어진 것이긴 하지만 머리가 없는 여신이 자아내는 독특한 신비감과 두 팔을 대신하고 있는 웅장한 두 날개도 보는 이들을 신화적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하지만 막 비상하려는 듯한 움직임과는 다르게 조각은 실제로는 이제 막 비상을 끝내고 땅에 내려온 여신을 조각한 것이다. 채 날개를 접을 여유도 없이 여신은 멀리 날아가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승리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발견된 손이나 오른쪽 유방이 치켜 올라간 모양 등으로 보아 머리를 뒤로 돌린 채 팔을 들어 승리의 장소를 가르키고 있는 형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 작품은 야외에 전시하기 위해 제작된 기념물이 아니라 신전의 벽감 같은 곳에 안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옷이 강한 맞바람을 맞아 펄럭이면서 둔부와 동체에 달라붙어 있는 모양을 통해서 해전의 승리를 기리는 의미는 충분히 읽어 낼 수 있다.

 

 

승리의 여신상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1820년 에게해의 밀로 섬에서 발굴된 작자 미상의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 조각. 정숙한 표정, 봉긋한 가슴, 허리부터 부풀어 가는 S자의 커브와 풍만하고 관능적인 히프, 부드러운 살결이 걸작으로 꼽히는데 이는 균형, 안정, 분방한 감정을 표현하는 당시의 조류를 따른 것이다.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스핑크스 상

 

 

스핑크스 상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루브르 박물관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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