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및여행/유럽여행사진(2016년)

(독일) 뢰머광장 (2016.06.02)

산을 오르다. 2016. 6. 1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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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뢰머광장 (2016.06.02)

 

 

과거 로마 군이 주둔한 곳이라 뢰머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시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9세기부터 박람회가 열렸으며 지금도 각종 국제전시장이 열리는 대형 광장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랜드마크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광장이지만 2차대전의 포화를 피하지는 못해 상당 부분이 파괴되기도 했다. 현재의 모습은 복원 공사를 거친 것으로 중세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정의의 분수와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동상이 있다. 광장에서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며, 매해 7~8월 무렵에는 민속 축제인 마인페스트가 개최된다.

광장 주변에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시청사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자리한다. 카이저의 돔(Kaiser Dom)이라고도 하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카롤링거 왕조 시기에 지어진 9세기의 건물을 모태로 하며 이후 여러 번의 증축과 재건을 거쳤다. 이곳은 특히 1562년부터 1792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대관식을 마친 황제는 시청사 건물인 뢰머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대성당의 탑 위에는 전망대가 있어 마인 강변과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광장 서쪽에 자리한 3동짜리 건물은 시청사로,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으며 15세기에 시의회가 사들인 것이다. 계단식으로 된 삼각 지붕이 특징인 운치 있는 건물이며 가운데 건물을 뢰머라고 부른다. 이 건물은 1562년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즉위 축하연이 열린 장소로서, 축하연이 열린 2층의 방을 ‘황제의 방(Kaisersaal)’이라 칭하고 이후 1792년까지 약 200여 년간 호화로운 축하연 장소로서 영광을 누렸다. 건물의 벽에는 독일 출신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당시의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홀의 지하에는 전시회장이 유치되었다.

광장 남쪽에는 12세기에 왕실 예배당으로 지어진 니콜라이 교회(Nikolai Kirche)가 있으며 이외에도 역사적인 건물이 많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뢰머 광장 [Roemer Square]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뢰머광장의 건물

 

 

장크트파울교회 앞의 동상

 

 

뢰머광장의 트램

 

 

건물사이를 연결하는 통로

 

 

장크트파울 교회

 

 

뢰머광장 근처의 모습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서 뢰머광장을 가는 통로

 

 

뢰머광장의 시청사

 

 

뢰머광장의 니콜라이교회(Nikolai Kieche)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오래된 니콜라이교회는 1290년 왕실 예배당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15세기부터는 시정부 소유의 예배당이 되었고 2차 세계대전때에도 니콜라이교회는 폭격을 면했던 교회라고 한다.

 

 

뢰머광장의 정의의 여신상

 

 

구 시청사 맞은 편의 목조건물들을 통칭하여 오스트차일레라고 하며 본래 15세기에 쾰른의 비단상인를 위하여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들은 2차세계대전때 파괴되었다가 이후 복원된 건물들이라 한다.

당시에는 토지에만 세금을 부과하고 건물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아서 토지를 매입후 1층만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2층부터는 1층보다 넓게 지으면서 건물과 건물사이 벽과 벽 사이를 붙혀서 난방비를 절감했다고 한다.

 

 

뢰머광장의 고풍스런 건물

 

 

뢰머광장의 시청사

 

 

 

 

 

 

 

 

유스티아 동상(Justitiabrunnen)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저울을 들고 눈은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는 어떤 편견도 배제한 평등함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상이다.

 

 

뢰머광장의 구 시청사에 있는 독수리 문양

 

 

뢰머광장 근처의 문양

 

 

뢰머광장의 목조건물(통칭하여 오스트차일레)

 

 

정의의 분수,정의의 여신상과 뒤로 니콜라이교회

 

 

뢰머광장과 니콜라이교회

 

 

장크트파울교회

파울교회(Paulskirche)는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있는 역사적 건축물로서, 독일 최초의 자유 선거로 구성된 의회인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회의 장소로 활용되어 독일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1786년 무너진 중세 시대의 '맨발의 수도사'교회를 대체할 목적으로 1789년부터 1833년까지 건축되었으며 1944년까지 루터교의 프랑크푸르트 중심 교회였다. 오늘날은 더이상 교회로 사용되지는 않으며, 대신 다양한 축제와 행사 장소로 활용된다. 대표적으로 매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평화상 수여 장소로 쓰이고 있다.(한국어 위키백과 인용)

 

 

장크트파울교회 앞 광장의 모습

 

 

장크트파울교회 앞 광장의 모습

 

 

유태인 석상이 있는 장크트파울교회

밧줄에 묶인 석상 밑에 2차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 감옥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장크트파울교회 주변의 건물

 

 

장크트파울교회 측면모습

 

 

장크트파울교회

 

 

뢰머광장 근처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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