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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지방문화재 41

강릉 정의윤가옥 (강릉 만성고택) (2021.01.09)

강릉 정의윤가옥 (강릉 만성고택) (2021.01.09) 정의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조선후기 정의윤 관련 ㅁ자 형태의 주택. 시도유형문화재. 내용 1985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었다. 구정에서 학산으로 들어서면 작은 개천을 앞에 두고 낮은 구릉을 따라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강릉 만성고택은 첫 번째 집이다. 건물의 배치는 영동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 주택으로 입구 맞은편에 사랑채가 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안채가 배치되고 그 양옆 90° 직각으로 광과 부속채가 이어져 있다. 이 집은 현 소유주의 조부가 1844년에 안채를 먼저 지었고, 사랑채는 1915년에 증축하였다. 원래는 사랑채 앞의 담장 안쪽으로 행랑채가 일렬로 이어져 있었다.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현 사랑방 앞으로 곳간이..

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 (2021.01.09)

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 (2021.01.09) 정의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굴산사지에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개설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사굴산문의 본산으로 알려진 굴산사지에 위치한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다. 제작경위 굴산사는 통일 신라 문성왕 9년(847) 구산조사의 한 사람이었던 범일(梵日)이 명주 도독(溟州都督)의 권유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어 석불 좌상의 제작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조각 기법으로 볼 때 굴산사가 창건된 이후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형태 굴산사지에는 모두 4구의 석불 좌상이 있는데 1936년 대홍수 때 이곳 농경지가 유실되면서 초석 일부가 노출되어 건물터가 확인되기 시작했고 이때 강릉굴산사지석불좌..

강릉 석천우물, 강릉 학산 서낭당(성황당) (2021.01.09)

강릉 석천우물, 강릉 학산 서낭당(성황당) (2021.01.09) 강릉 석천 신라 때 학산리에 살던 처녀가 돌샘〔石泉〕에서 물을 긷다가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아기를 낳았는데, 아비 없는 아기를 키울 수 없어 마을 뒷산 학바위 밑에 버린다. 그러나 밤새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새벽에 바위 밑에 갔다가 학이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그가 바로 범일국사로서 그는 굴산사를 창건하고 강릉지역에서 선풍(禪風)을 일으켰으며, 입적 후에는 대관령의 서낭신으로 추앙되었다. 대관령 산신의 고향 - 강릉 석천 (물의 전설, 2000. 10. 30., 천소영, 김동현 인용) 강릉 석천 강릉 석천 강릉 석천 강릉 석천 강릉 석천 강릉 석천 강릉 석천 [강릉 구정면 학산리 서낭당] ​ 정의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

철원 노동당사 (2021.01.03)

철원 노동당사 (2021.01.03) 요약 철원 노동당사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1946년 철원 지역의 주민들이 건립한 옛 조선노동당 철원지부 당사 건물이다. 본래 지상 3층 건물인데,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외부 벽체와 계단실만 남고 내부는 폐허로 남아 있다.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로써, 현재 안보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옛 조선노동당 철원지부 당사 건물. 1946년 강원도 철원 지역의 주민들이 건립한 노동당 당사(黨舍).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외부 벽체와 계단실만 남고 내부는 폐허로 남아 있다. 건립 경위 철원 노동당사가 자리한 철원 지역은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이 점유..

철원 이호민 선정비 (2021.01.03)

철원 이호민 선정비 (2021.01.03) 정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강원감사를 지낸 이호민의 선정을 기린 비. 개설 이호민(李好敏)[1762~1823]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全義)[충청남도 연기], 자(字)는 학여(學餘), 호(號)는 구헌(龜軒), 시호(諡號)는 효헌(孝獻)이다. 이만웅(李萬雄)의 5세손이고, 대사간 이덕부(李德孚)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원배(李元培), 아버지는 이서회(李瑞會)이다. 1801년(순조 1) 40세 나이에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주서(承文院主書)에 올랐다. 1802년 어사(御事)을 지냈으며, 1804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였다. 1805년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을 지냈다. 1806년 황해감사(黃海監司)로 재직하면..

철원 포충사(요동백 김응하 장군 묘비) (2021.01.03)​

철원 포충사(요동백 김응하 장군 묘비) (2021.01.03) ​ 정의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조선후기 선천군수 김응하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문화재자료. 내용 1619년(광해군 11) 후금과의 전투에서 당시 선천군수로 전사한 김응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건립하였다. 김응하는 명나라의 요청으로 새로이 흥기하는 후금을 토벌하기 위하여 도원수 강홍립(姜弘立)과 같이 좌영 군병을 이끌고 출정하였는데, 부차령(富車嶺)의 전투에서 명나라 군사가 크게 패하자 이를 구원하다가 전사하였다. 명나라 신종(神宗)은 그를 요동백(遼東伯)에 추봉하였고, 조선에서도 영의정에 추증하였으며,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특히, 효종대에 들어와 북벌론(北伐論)의 일환으로 존명의리(尊..

영월 김종길 가옥(조견당) (2021.01.01)

영월 김종길 가옥(조견당) (2021.01.01)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 1리에 있는 1872년(순조 27)에 건립된 옛집. 팔작지붕의 ㄷ자집이다. 1827년(순조 27)에 건립되었고, 뒤에 부엌광과 대청 앞의 문이 새로 설치되어 약간 변형되었으나 대체로 잘 보존된 편이다. 안채의 평면구성은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웃방과 안방, 부엌, 사랑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건넌방과 부엌이 있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1단을 쌓고 주초는 비교적 큰 자연석을 다듬어 썼으며, 그 위에 네모난 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홑처마에 한식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형태이다. 안방과 웃방 후면에 2칸의 툇마루를 두어 장독대와 더불어 여성의 작업 및 휴식 공간을 마련한 듯하다. 부엌 앞에는 부엌광이 개조되었고 사랑채는 나중에 건축된 것이다..

영월 창원리 고택 (영월 고진하 가옥) (2020.12.05)​

영월 창원리 고택 (영월 고진하 가옥) (2020.12.05) ​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1리에 있는 가옥. 1985년 1월 17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2호로 지정되었다. 1985년 1월 17일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뒤로 산을 등지고 있으며, 영서·중부 지방의 민가형을 나타낸다. 평면구조는 외형상 서로 붙어 있는 안채와 사랑채가 ㄷ자집 형태를 이루고 헛간채가 일(ㅡ)자형으로 배치된 튼 口자형이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세운 안채는 툇마루로 된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윗방, 안방, 부엌이 직각으로, 왼쪽으로는 건넌방이 배치되어 ㄱ자집 형태를 이룬다. 툇마루 뒷면에는 문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사랑채는 안채와 달리 높은 기단 위에 세우고, 지붕은 직각 맞배지붕으로 처리..

영월 북쌍리 고택 (영월 우구정 가옥) (2020.12.05)​

영월 북쌍리 고택 (영월 우구정 가옥) (2020.12.05) ​ 강원도 영월군 남면 북쌍리에 있는 우구정의 옛집. 1985년 1월 17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0호로 지정되었다. 1985년 1월 17일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안채, 사랑채, 헛간채로 구성된 ㅁ자집이다. 안채는 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과 부엌을 직각으로 두고, 오른쪽에는 건넌방을 두어 ㄱ자형을 이루었다. 마루 중앙의 기둥은 둥근 기둥이며, 한식 기와를 얹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일자형 집이다. 1칸의 대문과 왼쪽에 있는 사랑채는 2칸의 사랑방과 사랑방 앞쪽에 툇마루로 구성되었다. 기단의 높이는 90㎝ 정도로 자연석을 쌓고 덤벙주초에 기둥은 네모난 기둥이고, 지붕은 홑처마에 한식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이다. 헛간채..

영월 영모전 (2020.11.28)

영월 영모전 (2020.11.28)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시대 단종의 초상을 모신 사당. 시도유형문화재. 내용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무익공(無翼工) 홑치마 팔작지붕건물. 1977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단종(端宗)의 초상(肖像)을 모신 사우(祠宇)이다.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사약을 받고 17세를 일기로 승하하니 영월을 중심으로 한 인근 주민 모두가 슬퍼하였다. 조선 숙종 때 노산군을 다시 단종으로 추봉하자 영월군민들은 경모(敬慕)의 정을 모아 이곳에 사당을 짓고 영모전이라 하였다. 건물은 전면을 개방하고 안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중앙 한 칸에는 초상 안치실을 두었다. 양측칸에는 마루를 깔고, 뒤에는 살창(가는 살무늬를 놓아서 짠 창)을 설치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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