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지방문화재

홍성 홍주읍성 (2019.11.29)

산을 오르다. 2019. 12. 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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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읍성 (2019.11.29)



정의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사적 제231호

내용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800m이다. 동문인 조양문()과 성 안의 홍주아문(), 그리고 주변의 산성()을 포함한다. 백제시대의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처음 축조된 연대가 확실하지 않고, 고려시대에고쳐 쌓았다는 기록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세종실록지리지(錄)』에는 둘레가 533보 2척이고,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새로운 규식()에 맞추어 각 지방의 읍성을 고쳐 쌓았다. 이 읍성도 1451년(문종 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벽은원래 있었던 것보다 물려 쌓았는데, 둘레가 4,856척이고, 높이는 11척이며, 높이 2척의 여장()이 608개 있었다. 적대() 24곳 중 6곳, 문 4곳 중 1곳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성문 앞을 가려 쌓은 옹성()을 두지 않았다. 성 안에는 우물 2곳이 있었고, 성 밖에는 해자()를 파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문은 본래 3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현종 때 한계수()가 다시 수리하였고, 1824년(순조 24)에는 진장() 김계묵()과 홍주목사 이헌규()가 수리하였다. 1870년(고종 7)에는 홍주목사 한응필()이 조양문·경의문()·망화문() 등 3곳의 성문과 함께 관영()을 지었다. 조양문은 팔작지붕을 올린 정면 3칸의 다포계 문루로, 흥선대원군이 조양문의 편액을 친필로 하사하였다. 지금의 조양문은 1975년에 완전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1978년 10월 7일에 강도 5°의 지진으로 인해 성벽의 일부가 무너졌으나 1979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1982년에 부분 보수를 완공하였다.

1906년에는 이 성에서 의병이 일본군과 치열한 홍주성 전투를 벌였다. 곧 1905년에 민종식(, 1861∼1917)·이세영(, 1869~1938)·채광묵(, 1850∼1906)·안병찬(, 1854~1921) 등은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이듬해 5월 19일에 1,1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6문의 화포로 홍주성을 공격하여 일본군을 덕산()으로 쫓아냈다.

이 성은 특이하게 남문이 없고 북문에 문루가 없다. 특히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치소가 있는 자리로 큰 변동이 없고, 조선 초기에 새로운 축성 규식에 의해 축조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연구와 보존의 가치가 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홍주읍성



홍주읍성



안회당(홍주 동헌)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는 조선시대 홍주군의 동헌()이다. 전체 22칸 규모의 목조와가()건물로 1678년(숙종 4)에 홍주군의 정사당()으로 건립하였다. 홍주목사와 홍주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는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870년(고종 7)년에 동헌을 개축하고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안회당()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았다. 안회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노자안지() 소자회지()’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인들과 젊은 사람 모두를 위해 정사를 펼치겠다는 의미이다. 현판은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에 안회당을 부분 중수하면서 현판과 당기()를 새로 조각하였다.

(두산백과 인용)



안회당 현판



홍주동헌 안회당 빗돌



안회당의 모습



안회당건물의 모습



뒤에서 본 안회당의 모습



여하정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는 정각이다. 조선시대 홍주군의 동헌()으로 사용된 안회당()의 뒤뜰에 있다. 1896년(고종 33)에 홍주목사 이승우()가 건립하였다. 정각은 3평5합5작 규모의 목조와즙() 건물로 못 위에 떠 있는 수상정()이다. 정면에는 필서가() 김병수()가 쓴 여하정() 현판이 걸려 있다. 정각의 평면 형태는 6각형이고, 6각 기둥에는 시액() 12현판()이 붙어 있다.

(두산백과 인용)



여하정



여하정



여하정



여하정



여하정



왕버들 보호수(수령 약300년)



왕버들 보호수



소나무 보호수(수령 약200년)



소나무 보호수



느티나무 보호수(수령 약650년)



느티나무 보호수



느티나무 보호수



홍주아문

사적 제231호로 지정된 홍성 홍주읍성에 속한 아문으로,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다. 안회당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목조건물이다. 1870년 한응필 목사가 5칸을 수리 보수한 한식 와가()로 12평 9홉의 아담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원군이 사액()한 홍주아문의 글씨는 6.25를 전후해서 없어졌다. 지금의 홍주아문 글씨를 누가 썼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홍주군청 앞에 있어서 홍주의 간판 구실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 중 하나이다.

(두산백과 인용)



홍성 홍주읍성 옥



홍주읍성 옥



홍주읍성 비석군



홍주읍성 비석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홍주성 수성비



홍주성 수성비



홍주읍성 비석군



홍주읍성 비석군



홍주읍성의 만추



병오항일의병기념비



홍화문



홍화문



홍주읍성의 모습



홍주읍성



홍주읍성



홍주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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