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방문화재

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 (2023.01.17)

산을 오르다. 2023. 1. 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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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 (2023.01.17)

 

 

 

 

 

 

 

 

요약

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은 1936년부터 1941년까지 작곡가 홍난파 선생이 살았던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파동에 있는 서양풍 벽돌조 건물이다. 크게 보면 이 주택은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던 문화주택의 범주에 속하지만, 그보다 서양풍에 더욱 가깝다. 1930년 이래 계단과 경사지를 사용한 서양풍 주택의 공간 활용이 그 이후에 지어지는 도시 단독주택의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04년 9월 4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파동에 있는 서양식 근대 건축물.

건립 경위

이 일대는 서울 성곽이 서대문에서 서북쪽으로 올라가는 선상에 놓이며 동쪽으로는 경희궁의 궁장에 접하고 있었다. 1930년에 독일인 선교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인근 송월동에 독일 영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부근에 독일인 주거지가 형성되었다고도 한다.

변천

이 집은 독일인 선교사가 거처한 다음에 세 사람의 한국인 소유자를 거쳐서, 1936년에 난파 홍영후의 소유가 되었다. 홍난파는 1918년부터 1년 미만으로 일본의 도쿄에 유학한 적이 있었고, 1931년부터 2년간 미국의 시카고에 유학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외국 생활의 경험이 홍난파가 이 집을 구매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홍난파는 1934년에 소프라노 이대형과 재혼하였기에, 홍난파 부부는 1936년부터 홍난파가 숨지는 1941년까지 함께 이 집에서 살았다. 1942년에 이 집의 소유자는 일본인으로 바뀌었다.

형태와 특징

이 주택은 현재 본채, 별채, 외부 계단실의 세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가 홍난파 재세시의 모습이고, 별채는 1967년 이후에 증축된 것이라고 추정한다. 계단실은 본채와 별채를 연결하기 위해 생겨난 것인데, 본채의 외벽에 덧대어 지하 2층까지 내려가는 별채를 지원하고 있다.

홍난파 가옥 전체에서 남쪽과 북쪽은 1개 층의 높이 차이가 있다. 본채의 현관은 남쪽에서 계단으로 1.42m 올라가서 나오고, 현관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큰 방이 있고, 왼쪽에 거실과 작은 방이 나온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면서 1층의 칸막이 벽들을 없앴다. 이 1층이 이 주택의 중심공간으로 홍난파 선생의 대표곡들이 작곡된 곳이고, 거실에는 3개짜리 전구다발과 벽난로가 있다.

지하층에는 현관, 주방 겸 식당, 다락, 계단실이 있다. 지하층은 개념상 지하라고 지칭하지만, 경사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지상인 셈이다. 1층의 현관 밑에 지하층의 현관이 있어서, 주인 가족과 하인들의 동선을 분리할 수가 있고, 본채 안에서 북쪽에 1층과 지하층을 연결하는 계단실이 마련되어 있다. 본채를 지은 다음에 차차 증축한 별채와 외부 계단실은 경사지의 공간을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의의 및 평가

홍난파 가옥은, 작곡가 홍난파의 자취가 서린 곳이라는 장소적 의미에 더하여, 1930년 이래 계단과 경사지를 사용한 서양풍 주택의 공간 활용이 그 이후에 지어지는 도시 단독주택의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04년 9월 4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서울 紅把洞 洪蘭坡 家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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