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미술관

충재박물관 (2020.01.12)

산을 오르다. 2020. 1. 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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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재박물관 (2020.01.12)



충재 권벌선생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冲齋)·훤정(萱亭), 시호는 충정(忠定)이다.연산 2년(1496) 진사시에 入格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史官)과 삼사(三司) 및 승정원(承政院)과 각 조(曹)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고위관직에 재직할 때는 대의(大義)를 위해서 일신(一身)의 안위(安危)을 돌보지 않으며, 이로 인해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을사사화(乙巳士禍)의 화(禍)를 연이어 입었으나, 선비로서의 강직함과 격조를 간직했으며 평소 『근사록(近思錄)』을 애독하시며 경연(經筵)에서 진강(進講)까지 하였다.특히 을사사화 때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로 충순당(忠順堂)의 문정왕후(文定王后)에게 나아가 윤원형(尹元衡)을
위시한 소윤(小尹)일파의 전횡(專橫)과 무고하게 화를 입은 윤임(尹任), 유관(柳灌), 유인숙(柳仁淑) 등의 삼대신(三大臣)을 구하는 논지의 주장을 강력히 피력하였다. 당시 올린 「충순당입대계사(忠順堂入對啓事)」와 「논구삼신계(論救三臣啓)」는 그 내용이 너무나 충직하여 후세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평안도 삭주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별세하였다.명종 21년에 신원(伸寃)되어 관작(官爵)이 복원되고 선조조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고, 봉화(당시는 행정구역상 안동)의 삼계서원(三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沖齋先生博物館은 宗家에서 소장해오던 遺物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공간이다. 보물 482점과 기타 유물 등 총 10,000여점에 이르는 조선시대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子孫의 寄贈으로 인해 소장유물의 수량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沖齋先生博物館은 沖齋先生遺物館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애초에 宗家 境內에 건립되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 온 충재선생유물관은 문중의 기금과 후손들의 성금이 주축이 되어 建立된 것이다. 유물관의 건립은 그간 불안하게 관리해온 遺物을 도난으로부터 安全하게 지킬 수 있었고, 찾아오는 觀覽客에게는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보여줄 수도 있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건립초기부터 주변의 전통건물에 비해 지나치게 큰 건물이 전체적인 공간의 조형미를 깬다는 비판이 있었으며, 항온·항습시설의 부재로 인해 유물의 손상이 지속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2007년 청암정 뒤편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운영하고 있는데, 전시공간과 함께 수장고까지 갖추고 있어 유물의 전시와 보존이 가능하다.그간 소장해온 유물의 체계적인 관리와 이를 이용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진행중이다.



충재박물관



충재박물관 입구



청암정 현판



보물 제902호 권벌 종가 유묵 - 허목 청암수석 현판



보물 제901호 권벌 종가 고문서 - 산릉도감제명록(명종비 인순왕후 심씨 장례때의 산릉도감관원의 계회도)



복숭아 모양 은술잔



보물 제901호 권벌종가고문서(연산군일기세초지도)



보물 제901호 권벌종가고문서(호구단자)



보물 제901호 권벌종가고문서(교지)



보물 제901호 권벌종가고문서(유지)



보물 제901호 권벌종가고문서(시권)



보물 제902호 권벌종가 유묵(장필진묵)



보물 제902호 권벌종가 유묵(김구진묵)



보물 제262호 근사록



보물 제262호 근사록



"충"자 족자(중국 명나라 태조의 글씨.충재선생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올때, 받아온 것이다)



충재선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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