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및여행/중국(북경,서안) 여행사진(2013년)

이화원 (2013.10.07)

산을 오르다. 2013. 10. 15. 21:43
728x90

이화원 (2013.10.07)

 

 

1998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중국에서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완전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황족 정원이다. 특히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더 유명하다. 북경 서쪽 외곽인 해정구(海淀區 : 하이디엔취)에 위치해 있으며, 북경 시내에서는 15㎞ 떨어져 있다.이화원의 전신은 북경 청의원으로, 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웠을 때 함께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광서 14년(1888)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를 이용해서 다시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현재의 "이화원"으로 바꿨다. 1900년, 이화원은 또다시 팔국 연합군의 선공을 당했다. 서태후는 서안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거대한 자금을 들여 복구에 나섰다. 이화원은 무엇보다도 규모가 실로 엄청나며 총면적이 294㎡이다. 본래 평지였던 곳을 파내 만든 곤명호(昆明湖)와 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쌓은 만수산(萬壽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수면이 전체의 3/4을 차지한다. 서태후가 이화원에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둔 목적은 피서와 요양이였으며, 1903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서태후는 이 곳에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할 일이 많이 생기자 정원 앞 부분에 궁전과 생활거주지구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화원은 궁전과 정원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황족 정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인공호수이지만, 인공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보트와 곤명호 위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곤명호 동쪽 기슭에 잇는 17 공교의 난간에 새겨져 있는 544마리의 사자도 볼 만하다. 또한 곤명호를 안고 있는 만수산은 역시 곤명호를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화려한 누각이 있으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역시 인기가 좋다.

이화원의 주요 명소들로는 정문인 동궁문(東宮門)을 비롯해, 덕화원(德和園),장랑(長廊),불향각(佛香閣) 등이 있다. 동궁문은 이화원의 정문으로 삼명양암(三明兩暗)의 무전식 건축양식이 사용되었으며, 덕화원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경극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높이 21미터에 상,중,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랑은 동쪽으로는 요월문(邀月門)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석장정(石丈亭)까지 전체길이 728미터에 총 273칸의 화랑으로 이어진 복도 건축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한 장랑(긴복도)이다.

 마지막으로 불향각은 만수산 앞의 산비탈길에 세워진 높이 21미터의 거석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남쪽으로는 곤명호를 향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지혜해불전(智慧海佛殿)을 기대고 있다. 이화원의 상징적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화원 가는 문

 

 

의운문

 

 

 

 

 

의운관

"의운"이란 서적을 수장한다는 뜻이다. 건륭 15년(1750년)에 건설되었다. 의운관 양쪽 행랑에는 곁채가 있고 기둥이 5개 있으며, 동쪽은 도존재이고 서쪽은 근서현이다.

함풍 10년(1860년)에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 버렸고, 광서 12년(1886년)에 재간된 후 광서 황후가 거주하는 곳이 되었다.

 

 

의운관

 

 

 

 

 

 

 

 

낙수당

낙수당은 건륭제가 최초로 건립했으며 낙수라는 칭호는 논어에서 따왔다. 서태후때 낙수당은 침궁으로 사용했으며, 정무, 식사, 탈의장, 침실등 모두 네칸의 방이 있다.

이화원에서 가장 호화스럽게 지어진 건물로 중국에서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장소이다.

이화원에서는 현재 낙수당 내부는 개방하지 않고 있다.

 

 

불향각(푸샹가오)과 뒤로 불당 지혜해(지후에이하이)

곤명호(쿤밍호) 북쪽에 있는 약 60m 높이의 만수산(완셔우산)은 쿤밍호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다.

건축물들은 모두 산의 남쪽 기슭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산 정상에 있는 불당 지혜해는 드넓은 곤명호를 비롯한 이화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아래 21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6각형의 불전 불향각은 이화원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로 꼽힌다.

 

 

곤명호를 바라보기에 좋은 공간인 지춘정

 

 

곤명호와 불향각,지혜해

 

 

곤명호

 

 

지춘정

 

 

곤명호와 불향각

 

 

이화원의 수석

 

 

요월문(邀月門)

요월문은 장랑(長廊)이 시작되는 동측문(東側門)이다.

 

 

옥란당과 덕화원, 문창각

 

 

문창각

 

 

곤명호와 17공교

 

 

옥란당과 덕화원의 모습

 

 

 

 

 

만수산 불향각

 

 

 

 

 

 

 

 

불향각앞 수석

 

 

불향각

 

 

불향각

 

 

옥란당

 

 

장랑도

채색 화랑 장랑에 그려진 그림의 수는 약 14,000여폭에 달한다.

그중 인물에 관한 그림은 주로 중국 고전문학인 홍루몽, 서유기, 삼국지연의, 수호지, 봉신연의, 요새지 등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장랑도

 

 

유가정

장랑은 4개의 이중처마 팔각정자를 이어 놓았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유가정, 기란정, 추수정, 청요정 순으로 지어졌으며 1년 4계절을 의미한다. 장랑을 유람하다가 잠시 아픈 다리를 쉬며 경치를 감상하는데 안성마춤이다.

 

 

 

 

 

소나무

 

 

문창각

 

 

문창원

 

 

 

 

 

 

 

 

 

 

 

 

 

 

 

 

 

인수전

1888년 청대 광서 14년, 동치제와 광서제 2대에 걸쳐 섭정을 하며 황제위의 권력을 누렸던 서태후가 해군 예산을 유용하여 폐허가 된 이화원을 확장, 재건했다. 국비의 소모는 훗날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는 근본원인이 된다.

 

 

 

 

인수전 대원보경

인수전은 황제와 서태후가 조회에서 정무를 보던 때의 시설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인수전은 광서제에게는 참담한 장소다. 어린시절은 서태후의 수렴청정으로 무늬만 황제 열할 이었으며, 극기야 서태후에게 권력을 박탈당하고 유폐된 후에는 인수전에 거동조차 못한 우울한 황제가 되었다.

 

 

인수문

 

 

인수전

 

 

인수전 동기린(仁壽殿 銅麒麟)

인수전 앞에는 청대 건륭제때 만든 동기린이 있다.

용머리에 사슴의 뿔, 사자의 꼬리, 소의 발굽, 온몸에는 용 비늘이 덮혀있다.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사악을 퇴치한다.

 

 

인수전 동기린

 

 

인수전 동기린

 

 

이화원 장수석(壽星石)

 

 

이화원 동궁문 옆의 풍경

 

 

이화원 동궁문 옆의 풍경

 

 

이화원 동궁문

동궁문은 이화원의 정문으로 3개의 문이 있는데 중간문은 황제나 황후가 출입하던 어로문이다.

동궁문에 걸려있는 이화원이란 편액은 청대 광서제 친필이다. 이문은 현재 이화원 출입구로 사용되고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