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

장수향교 (2022.05.02)

산을 오르다. 2022. 9. 1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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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향교 (2022.05.02)

 

 

 

 

 

 

 

정의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향교. 교육시설.

내용

1407년(태종 7)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장수면 선창리에 창건하였다. 1686년(숙종 12)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877년(고종 14)에 현감 홍우정()이 중수하였으며, 1935년에 중수하고 1970년·1973년·1975년에 각각 보수하였다. 이 향교는 임진왜란 때에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西)·사마재()·양사재()·고사()·부강문()·정충복비각()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강학공간은 강당이 앞에있고, 재사가 뒤에 있는 전당후재()의 배치이다.

대성전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적 건물의 하나로 보존되고 있다. 그 구조는 낮은 석축 기단 위에 세운 맞배집으로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되어 있으며, 5성(),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정충복비는 1985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소장 전적으로는 판본 90종 237책, 사본 32종 57책의 총 122종 294책이 있으며, 이 중 『청금록()』·『장수현도유안()』·『유안()』·『수정향안()』·『향교조례()』·『선안()』·『향헌()』 등의 필사본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향교의 특징은 원노()인 정충복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왜장 고바야가와[]의 부장 안코쿠시[]가 장수에 침입하였을 때, 원노인 정경손()이 교복을 입고 문묘 앞에 꿇어앉아 경서를 외우며 말하기를, “만약 향교에 들어오려거든 먼저 내 목을 베고 들라.”고 하였다. 이에 왜군들도 그의 기개에 감복하여 ‘본성역물범()’이라는 쪽지를 주고 물러가 왜군 후속부대의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를 비롯한 열읍의 향교가 거의 소실되었으나 오직 장수향교만 전화를 입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정경손의 공로였다. 그리하여 후인들이 그의 의행()을 기리기 위하여 향교 문전에 의거비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 비는 장수의 삼절()로 이름나 있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맡고 있다.

[長水鄕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

 

 

 

 

 

장수향교 홍살문

 

정충복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

 

정충복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

 

정충복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

 

외삼문

 

명륜당

 

명륜당 현판

 

진덕재

 

경성재

 

사마제

 

내삼문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대성전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대성전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대성전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대성전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대성전

 

명륜당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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