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천주교 유적지,개신교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2020.05.21)

산을 오르다. 2020. 5. 2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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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2020.05.21)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에 건립된 성당. 성공회성당·목조건물. 시도유형문화재.

개설

강화군 온수리 성공회의 본채인 예배당 건물과 2층 종탑 건물로, 2003년 10월 27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변천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고종 43)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초기 서양 기독교의 교회양식을 볼 수 있는 목조건물이다.

내용

초기 서양 기독교 양식의 2고주() 5량가()의 합각지붕 건물로, 본채인 예배당 건물과 2층 종탑 건물 등 2동이 있다.

성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중앙 1칸을 2층 종루로 삼은 문루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원래 본채 건물의 외벽은 목조기둥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조적조로 변형되어 있는데, 서도의 중앙교회 건물 구조 및 양식과 매우 흡사하다. 지붕은 전통기와로 덮었으며, 처마는 홑처마로서 팔작지붕이다. 지붕 용마루 끝망과 뒤쪽에 십자가를 세웠고 합각 중앙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붉은 벽돌을 쌓았다.

성당 정면은 건물의 서면으로 출입구이고, 중앙 칸에는 두 짝의 양식 판문()의 문비()를 달았다. 양측 칸은 중앙에 유리창문을 설치했고 중방 밑은 벽돌을 쌓아 벽체로 하였다. 기둥 위 창방과 납도리 사이에는 접시받침을 배치하여 건물의 격을 높였다. 건물의 동면은 중앙 칸에 양식 판문 한 짝을 설치하여 본당 뒷문으로 삼았고, 양측 칸은 중방 위에 작은 유리창을 달았다. 건물의 남면은 양단 한 칸만 기둥위 창방과 납도리 사이에 접시받침을 설치하였다.

본당 내부는 중앙에 두 줄의 고주()를 세우고 비교적 가는 부재()로 된 보를 걸었으며, 고주 머리에서 보 밑을 초공으로 받쳤다. 보 위 중앙에는 판대공()으로 마루도리를 받쳤으며, 마루도리 밑에는 직접 장혀[]을 붙이지 않고 접시받침을 배치하고 접시받침 밑에 장혀형 장재()를 걸었다.

본당의 중방 밑 벽돌벽은 20년 전에 기둥하부 부식이 심하여 절단하고 중방 밑 전체를 벽돌벽으로 보수한 것이다. 원래는 입방체 화강석 기초 위에 세워진 2조 호형()으로 귀깍음한 각주()의 벽체는 전통기법의 회벽처리로 마감하였다. 현재 화강암 초석은 부근에 보존되고 있다.

종루 건물은 원래 모두 전통 목재건축기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현존 건물과 같은 모습의 건물이었으나, 본당 보수시 부식이 심했던 기둥과 벽체를 모두 해체하고 시멘트 블록으로 축조하고, 지붕만 목조건축으로 꾸민 것이다.

의의와 평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로, 초기 성공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종교사 및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성공회의 사제들이 거쳐하던 건물. 사제관·성공회한옥. 시도유형문화재.

개설

강화 온수리 성공회의 사제들이 거처하는 한옥 건물로, 2002년 2월 4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변천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고요한 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조마가(Mark N. Trollope) 신부가 대한제국 시기인 1896년(고종 33)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하면서 2년 후인 1898년에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교회의 사제관 및 문화재로서 잘 보존되고 있다.

내용

건물 형식은 ㄷ자 모양의 연와구조의 한옥 건물로, 면적은 126.46㎡이다. 5량 4칸의 홑집으로, 건물의 배치는 ‘상의공간’인 교회와 ‘하의공간’인 사제관이 분화된 개념으로 배치되어 위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건물 지붕 네 귀에 합각붕을 얹어 독특한 양식을 이루고 있어 눈에 띈다. 또 천장은 구조미를 살리기 위해 노출시키고 목재의 질박한 자연미를 표현하였으며 외벽을 화초장처럼 쌓아올려 멋을 낸 것도 특징적이다.

의의와 평가

이 사제관은 성공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 부임한 영국인 신부가 한국의 전통주거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라 할 수 있다. 또 건축수법이나 치목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여 기술적인 적용을 하였는가를 드러내는 건축으로 성공회의 토착화를 위해 애쓴 영국 국교회의 노력이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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