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및여행/유럽여행사진(2004년)

베니스 여행사진 1 (2004년)

산을 오르다. 2004. 11. 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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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여행사진 1 (2004년)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이태리 여행 시작

 

 

이태리 북부의 산과 강(강물은 석회석 물질이 함유되어 희뿌연 색임)

 

 

이태리 북부의 산과 강

 

 

베니스(베네치아)지도--물고기 모양
이탈리아 북동부 아드리아 북해변 본토에서 약 5Km 의 라그나에 있다. 관광, 공업도시, 베네토 주의 주도로 5세기 초에 거주가 시작 되었고 7세기 말에는 이미 무역의 중심지로 되어 10세기 말에는 동 지중해 무역에서 번영해서 이탈리아 최강의 자치도시의 하나로 발전했다. 11∼13세기 십자군 시대에 동 지중해 지역으로 영토를 확대하는 동시에 지금과 같은 도시 형태를 기본으로 만들었다. 산마 르코 성당을 비롯한 교회나 궁전건축 등 기술이 상당히 발전하였고 14∼15세기 초에 그 절정기를 맞이하여(아드리아해의 여왕)그 명성은 드높았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터키에 의해 동 지중해에서 점차 내쫓기면서 그 후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기 전까지 약 70년 간 프랑스, 오스트리아에 지배를 받았다. 베네치아는 118의 섬을 400여개의 다리와 150의 운하로 연결시킨 수상도시이다.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자치주의 주도(州都). 인구 29만 8915(1996). 영어명은 베니스이다.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潟湖) 위에 있는 122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형성되었다. 5∼7세기 이탈리아 북부에 침입한 서고트족·훈족·롬바르디아족으로부터의 피난처로 아드리아해 북쪽의 여러 도시의 주민이 이주하여, 앞서 살고 있던 어민과 함께 몇 개의 취락을 만든 뒤 연합체를 형성하고 697년에는 1명의 수장(首長)을 선출하는 과두공화정을 실시하였다. 소금·고기의 판매와 무역으로 부유해진 이 연합체의 지배를 둘러싸고 비잔틴제국과 프랑크왕국이 대립하였다. 8세기 말 프랑크왕국의 공격으로 수도를 마라모코에서 리알토로 옮기면서 마침내 베네치아라고 하였다. 810년 비잔틴제국과 프랑크왕국의 조약으로 베네치아는 비잔틴제국에 귀속되지만, 프랑크왕국과의 무역권을 가지게 되어 동서무역의 중심지가 될 토대를 마련했다.

베니스 섬으로 이동하는 여객선에서

 

 

9∼10세기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 북쪽의 경쟁상대인 항구도시 코마키오를 타도하여 항로로서 중요한 달마티아연안에 패권을 수립했다. 이어 11세기에 약체화된 비잔틴제국의 요청으로 남쪽의 해상방위를 맡는 대가로 제국 내에서 광범위한 무역특권을 얻었으며, 동지중해에도 진출하여 이슬람교도와 무역을 하였다. 십자군이 시리아에 진출하자 십자군에게 원조한 대가로 거기에서 무역특권을 얻었다. 이와 같은 특권으로 얻은 부와 힘을 배경으로 13∼16세기에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르네상스시대에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나 오스만투르크의 서방진출로 15세기 말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7세기에는 영국 등 서유럽 여러 나라의 해외무역 진출로 몰락하였으며, 1797년 이탈리아에 침입한 나폴레옹 1세에게 점령당했다가 오스트리아에 이양되었다. 1805년 나폴레옹 지배하의 이탈리아왕국에 귀속되었지만, 15년 다시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롬바르드베네토왕국에 귀속되었다.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정박해 있는 배를 보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배하자 66년 국민투표에 의해 통일 이탈리아왕국에 편입되었다. 제 1 차세계대전 뒤 항만시설과 산업의 근대화가 진행되었다. 스타치오네마리티마이나항(港)·마르게라 등이 상공업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으며, 유리제품·보석·대리석 세공·도자기·피혁제품·레이스직물 등의 수공업품 제조가 주요 산업이다. 섬들은 길이 좁고 수로(水路)로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자동차는 통행할 수 없고, 길이 약 10m, 너비 1.5m 정도의 곤돌라가 대신하고 있다. 육지와는 1864년 중화학공업지역인 메스트레와 철도에 의해 연결되었다. 그 뒤 1932년 자동차도로가 건설되었으며, 공항도 세워졌다. 시의 동부에 있는 현대미술전람회장에서는 베네치아영화제 등 문화활동이 행해지며, 1868년 창설된 베네치아대학은 이곳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아 동양연구가 활발하다. 산 마르코 대성당·두칼레 궁전 등 유적이 많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항구에 정박중인 여객선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항구에 정박중인 여객선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베니스 섬으로 이동중

 

 

배에서 내려 산 마르꼬 성당으로 이동중

 

 

산 마르꼬 성당

 

2명의 상인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 마르코 유골의 납골당(納骨堂)으로 세워진 것(829-832)이다. 그 후 성마르코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이 되었다. 11세기 말에 현재의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었는데 이 재건공사에 롬바르디아의 건축가와 석공(石工)이 상부구조(上部構造) 건축에 참가했다. 산마르코성당의 건축양식은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십자형(十字形)의 바실리카로 다섯 개의 동방적(東方的)인 돔을 받치고 있으며, 파꽃형[蔥花形]의 아치와 고딕풍의 천개(天蓋)가 이어진 정면(파사드)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대리석 건축으로 황금빛의 배경을 지닌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산 마르꼬 성당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면서부터 도제(총독)를 비롯한 베네치아 시민(市民)은 동방을 침략할 때마다 이 건축을 장식할 여러 가지 물건과 조상(彫像)·부조(浮彫) 등을 가져오는 습관이 생겨 이 건물은 그런 것들로 장식되었다. 예컨대 정면 위의 회랑(回廊)에 놓여 있는 네 개의 브론즈 말(높이 1.6m)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것으로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에 옮겨놓은 것을 1204년에 도제가 베네치아로 가져온 것인데 이런 조상이나 부조들은 수없이 많다. 또 외부와 내부를 뒤덮듯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는 12~17세기에 계속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미술사적(美術史的)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내부는 그리스 십자형 위의 다섯 개의 큰 원천정(圓天井)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성마르코의 업적을 말해주는 12~13세기의 그림을 비롯하여 티치아노의 바탕그림에 의한 모자이크 등이 장식되어 있다.

 

 

산 마르꼬 성당
성당내부에는 금색찬란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있다.

 

 

산 마르코 성당

 

 

산 마르코 성당

 

황금의 교회로 이름 붙여진 성당으로 르네상스와 17C에 변형이 가해졌으며 다양한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특히 대리석과 모자이크의 아름다운 장식이 유명하다. 성당 앞에는 사이프러스, 칸디아, 모레아의 베니스 왕국을 상징하는 세 개의 깃대가 꽂혀있다.

 

 

산 마르코 성당

모자이크는 성 마가의 유해를 성당으로 옮기는 내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드디어 곤돌라를 타다.

 

 

곤돌라

베니스의 교통수단은 크게 3가지로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수상버스 바토레토(Vatoretto), 모터보트인 수상택시(Motoscafi), 그리고 베니스의 또 다른 멋인 늘씬한 클래식 스타일의 배, 곤돌라(Gondola)이다.

 

 

곤돌라를 타고

그 중 베니스에서만 볼 수 있는 곤돌라는 바닥이 평평하여 수심이 낮은 곳에서도 이동이 가능하며 좁은 운하 사이를 유유히 다니기에 좋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곤돌라를 만들기 위해선 3개월간의 건조 과정을 거친 280여개의 나무 조각들을 두 달에 걸쳐 조립해야만 비로소 곤돌라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곤돌라를 타고

곤돌라의 클래식한 외관 못지 않게 중절모와 세미 정장 차림의 멋쟁이 이태리 뱃사공의 모습은 배에 탄 우리들에게 마치 중세시대의 귀족이 된 듯한 환상을 갖게 해준다.더우기 이런 멋진 곤돌라을 운전하기 위해서는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운전연습을 거친 후에야 면허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곤돌라를 타고(운하옆의 건물들)

1층은 창고로 사용되고 2층 이상부터 주거시설로 사용된다고 함.

 

 

곤돌라를 타고(현재 베니스는 점점  물에 잠기고 있어 향후 베니스의 영광도 사라지게 될 운명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곤돌라 사이를 잘도 운행하더군요.

 

 

곤돌라를 타고(고풍스러운 건물)

 

 

곤돌라를 타고

 

 

탄식의 다리

 

1600년에 지어진 이 다리는 한때 베네치아 총독들의 궁전인 두칼레(Ducale)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나 있는 감옥을 잇는 다리이다. '10인의 평의회'에서 형을 받은 죄인은 누구나 이 다리를 지나 감옥으로 연행되었는데, 죄인들은 이 다리의 창을 통해 밖을 보며 탄식을 했다고 한다.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

 

 

산 마르코 광장

 

수많은 비둘기떼와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선착장이 있는 바다에 면한 부분은 피아체타(Piazzetta, 소광장)라고 하는데, 이곳에 멀리 콘스탄티노플에서 옮겨온 흰 대리석으로 만든 2개의 원주가 있다. 원주 위에는 베네치아의 수호신 날개 달린 사지와 성테오도르상이 있다. 광장 동쪽으로 산마르코 대성당이 있고, 광장의 주위는 흰 대리석의 열주가 줄지어 있는 회랑이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이 광장을 보고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산 마르코 성당

 

 

산 마르코 성당

 

 

산 마르코 성당과 종탑

 

 

산 마르코 성당과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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