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선유구곡(문경 선유동계곡) (2019.12.25)
둔덕산과 대야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맑은 계곡이 용추폭포를 거쳐 학천정에 이르고 옥석대 깊은 바위를 뚫고 옥하대를 거쳐 선유칠곡으로 흘러간다.
옥하대에서 학천청에 이르는 거리가 약1.8km에 이르며 선유구곡을 형성하는 명소는 누가 이름을 붙이고 바위에 새겨 경영했는지, 언제 이 선유구곡이 완성되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선유구곡을 노래한 구곡시를 통해 구곡을 경영했던 이들의 마음을 엿볼수 있을 뿐이다.
선유구곡을 지은 이는 외재 정태진(1876~1956)으로 자는 노수,호는 서포 또는 외재라 하고 관향은 나주이다.
외재는 이동정,곽종석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경술국치 이후에는 만주 요동으로 건너가 덕흥보에서 개간으로 영위하며 광복운동에 전념하다가, 기미년(1919)에 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곽종석과 연계 서명하여 독립을 청원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달성형무소에 구금되었다.
혹독한 고문에도 굳게 지조를 지키며 출옥 후에는 문경시 초옥 관문에 은거하며 독서로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은거 중에 그가 이성래와 함께 선유구곡을 찾은 것은 정해년(1947) 5월이며 이때 선유구곡의 절경을 시로 남겨 후손에 전해진다.
정태진의 선유구곡을 노래한 서시에서부터 유람은 시작된다.
‣ 서시(序詩)
十載經營此一遊 십년을 살다가 이렇게 한 번 노니니
洞門深處興悠悠 선유동문 깊은 곳에 흥취 가득하다.
淸溪曲曲靈源瀉 맑은 시내 굽이굽이 원두에서 흘러오고
老石磷磷積翠浮 늙은 돌은 울툭불툭 푸른빛이 떠돈다.
曠世蒼茫追隱跡 선인은 아득하니 숨은 자취 따라가며
幾時粧點獲勝籌 몇 번이나 자리 잡고 좋은 계책 얻었는가.
金丹歲暮無消息 금단은 한 해가 다하도록 소식 없으니
羞向人間歎白頭 부끄러이 세상에서 백발을 탄식하네.
제1곡 옥하대
선유칠곡의 마지막 지점 칠리계에서 선유구곡은 옥하대로 시작한다. 끝과 시작은 인간세상이 정해놓은 인공의 점일 뿐 돌고도는 대자연에서는 이 또한 의미없음이다.
옥하대 : ‘아름다운 안개가 드리누은 누대’ 라는 의미.
白石朝暾相暎華 흰 돌에 아침 햇살 비처 밝게 빛나고
晶流寒玉紫騰霞 맑은 시내 찬 물결에 안개 붉게 오른다.
閒尋題字迷難辨 한가로이 새겨진 제자 찾기가 어렵고
只有白雲臺上遐 흰 구름만 누대 위로 저 멀리 자리하네.
옥하대
안개가 낮게 드리워진 곳을 신선계인양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다면 이미 신선이 아니던가.옥하대에는 각자가 없다.
제2곡 영사석
'신령한 뗏목 바위'란 뜻의 영사석.
옆에서 본 바위의 모습이 흡사 뗏목처럼 넓고 안정감 있다. 이 바위에 누워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뗏목에 누워있는 착각이 들만하다.
영사석
영사석
너럭바위를 형성하고 있는 영사석이 제법 안정감이 있게 자리잡고 있다.
영사석
영사석 옆으로 흐르는 물길이 마냥 한가롭다.
영사석 각자
以石爲槎喚作靈 돌로 뗏목 삼아 선령을 부르거늘
中流停著歲冥冥 시내 가운데 머무르니 세월이 아득하네.
傍崖又有仙人掌 벼랑 곁엔 또한 선인의 자취가 있으니
一路窮源指可聽 한 길로 원두를 찾아가면 만날 수 있으리.
장군손 바위
영사석에서 잠깐 눈을 돌려 옆을 보면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끈다. 선유구곡에서 수련하던 선인의 자취라고 하는 장군손 바위.
제3곡 활청담
긴 암반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휘파람을 불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물은 흐르듯이 고이고 고인듯 흐르는 '활발하게 흘러가며 맑다'는 의미를 가진 활청담
활청담
암반 사이로 스미듯이 흘러가는 계곡이 유려하다.
활청담 각자
靜處從看動處情 마음으로 정처에서 동처를 바라보니
潭心活活水方淸 못 속이 활발하니 못물이 맑아지네.
本來淸活休相溷 본래의 맑은 마음 흐리게 하지 마라
一理虛明道自生 이치가 허명하면 도는 절로 생기리라.
제4곡 세심대
발 담그며 잠시 쉬었다가 가기 그만이다. 바위에 전서체로 쓰인 ‘洗心臺’ 글씨는 춤을 추듯 아름답다.
세심대
너락바위 사이로 잔잔하게 흐르는 냇물은 심장을 요동치게 하지 않아 마음을 씻기에도 안성마춤격이다.
세심대 각자
虛明一理本吾心 허명한 이치가 본디 내 마음이거늘
枉被紛囂容染深 부질없이 세상사에 깊이 물들었네.
到得玆臺思一洗 이 대에 이르러 한번 씻길 생각하니
肯留滓穢分毫侵 어찌 묵은 때를 추호라도 두겠는가.
구노천 각자 바위
세심대 각자 바위 옆에 있다.
구노천 각자
'구노(九老)'는 당나라 백거이가 아홉 노인들과 함께 구노회(九老會)를 만들어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살아간 고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 선유동천에서 노닌 구노는 누구였을까? 제5곡 구은대에 새겨진 김태영을 비롯한 구은은 아니었는지?
제5곡 관란담
이 바위 앞에 제법 넓은 소(沼)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물을 보는 곳이라는 뜻 같다. 맹자는 란(瀾)을 여울목이란 뜻으로 해석하면서 여울목을 보면 원두(源頭)를 알수 있다하였으니, 관란담을 노닐던 신선들도 여기 이 물을 보며 도의 근본을 헤아렸던 듯 싶다. 또한 주자의 무이정사가 있는 제5곡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이곳을 선유구곡의 중심으로 여겼을법도 하다.
이 바위에 구은대라 하여 이곳을 노닐던 아홉 사람의 이름을 새겨놓았으니, 또한 이곳을 선유의 중심처로 삼았으리라 생각한다.
관란담
이곳에서 는 소의 풍경이 자못 여유롭다.
관란담
관란담
潭上湍流瀉作瀾 못 위 급한 물살 쏟아져 이룬 물결
到來潭處勢全寬 연못에 이르러선 그 기세 잔잔하네.
觀他有本元如是 원래 이와 같이 근본 있는 물결 보니
照得吾心一鑑寒 차가운 수면 위에 내 마음 비춰보네.
*관란(觀爛) : ‘물을 바라볼 때는 반드시 그 단급처(湍急處: 물결이 급히 흐르는 곳)를 보라’는 뜻.
학문하는 태도에 비유하는 것으로 성인의 도는 크고 근본이 있으니 배우는 자가 반드시 공부해야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구은대 각자
구은대 각자
제6곡 탁청대
'탁청이란 말은 창랑의 물이 맗으면 내 갓끈을 씻는다 라고 한 굴원의 고사가 떠오르는데 세속의 때를 씻기에 너무나 맑은 물이다.
탁청대
탁청대
탁청대
臺前流水絲漪橫 누대 앞에 흐르는 물 일어나는 실물결에
一濯長纓萬累輕 한 번 긴 갓끈 씻으니 온갖 근심 가벼워라.
想像損翁當日趣 손옹이 사신 그때 가진 흥취 상상하니
滄浪一曲玩心明 푸른 물결 한 구비에 완심이 밝아지네.
제7곡 영귀암
"영위(詠歸)"는 공자와 증석의 고사에 나오는 말로 이상향을 노래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영귀암
영귀암
영귀암
臨流盡日弄晴暉 물에 임해 온종일 맑은 빛 즐기다가
風浴隨時可詠歸 수시로 바람 쐬고 읊조리며 돌아온다.
不必沂雩能撰志 꼭 기우가 아니라도 뜻을 펼 수 있으니
巖臺自足振春衣 바위 누대 자족하며 봄옷을 떨치리라.
*영귀(詠歸)는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말.
공자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제자들은 벼슬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다고 답했는데, 제자 증점(曾點)이 대답은 달랐다.
"늦은 봄에 봄옷을 지어 입고 어른 대여섯 명,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 기우제를 지내는
널찍한 곳)에서 바람을 쐬다가 노래하며 돌아오는 삶을 살고 싶다."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모춘자, 춘복기성, 관자오륙인, 동자육칠인, 욕호기 풍호무우, 영이귀.)
이에 공자가 증점의 뜻에 동의하자 세상의 욕망을 버리고 오롯이 가족과 즐거이 봄나들이를 하고 노래하며 집으로 돌아온다는
영이귀(詠而歸)에서 비롯된 말이 ‘영귀’이며, 이후 ‘영귀’는 이루고 싶은 삶의 이상향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제8곡 난생뢰
톡톡 튀는 듯한 모양의 글자가 새겨진 바위.
난생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난새와 악기인 생황을 뜻하니 이는 곳 난을 타고 생황을 부는 신선을 말한다.뢰는 여울이다.저 여울에 흐르는 물소리가 바로 신선의 피리인 것이다. 이곳이 바로 신선의 세계인 것이다.
난생뢰
난생뢰
琮琤石瀨奏笙鸞 돌여울 물소리 난새의 노랫소리
縹渺仙踪底處看 저 아래 아득히 신선 자취 보인다.
從古閬林多怪秘 옛부터 신선 사는 곳엔 신비롭고 괴이하니
雲間鷄犬是劉安 구름 사이 닭과 개는 바로 유안이네.
*여울 물소리가 난새가 연주하는 생황의 소리로 들렸나...
*유안(劉安) : 한무제의 총애를 받던 회남왕. 그는 늘 신선의 세계를 노래했다.
제9곡 옥석대
'옥으로 만든 신발'인 옥석을 김문기 교수가 "득도자가 남긴 유물"이라는 뜻으로 고증하면서, 선유구곡의 마지막 굽이에 이르러 득도자가 유물로 남겨 놓은 옥석대에서 이를 통해 도를 만다고 도를 얻었을 것이라 한다.
선유구곡을 경영했던 신선이 누구인지는 알수 없으나 선유의 물길을 거슬러 이곳에 이르로 드디어 옥석으로 표상되는 도를 얻고 깨달음을 얻은 듯한 심사를 얻어 이름을 남겨놓은 것이라 추측한다.
옥석대
옥석대
옥석대
옥석대
全石跨溪鏡面開 시내가 흐르는 전석엔 거울이 열리고
凹爲泉瀑峙爲臺 파인 곳은 폭포 되고 언덕은 누대 된다.
仙人遺寫今何在 선인의 남긴 자취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應有雙鳧葉縣來 섭현에서 날아온 두 마리 오리가 있으리.
*옥석 : 옥으로 만든 신발이란 뜻. 도를 이룬 사람이 남긴 유물이라는 의미.
*섭현에서 날아온 두 마리 오리 : 왕교(王喬) 조에 나오는 일화.
왕교(王喬)는 신선의 도술로 오리를 타고 황제의 조회에 나갔다는 인물이다.
선유동 각자
신라시대 대학자 최치원이 새긴 선유동
선유동 각자(고운 최치원의 친필)
학천 각자(구한말의 그 유명(?)한 이완용이 새긴 각자. 나라팔아먹을 상황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여유가 있었을까)
학천정
도암 이재 선생(1680~1746)을 기려 후학들이 1906년에 세운 정자
학천정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도암 이재(陶庵 李縡)가 후학을 가르치던 자리에 지역 유림(儒林)들이 그의 덕망을 기려 세웠다. 문경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선유동 계곡은 대야산 자락에 있는 명승지로, 첩첩이 쌓인 기암괴석과 사시사철 흐르는 맑은 옥계수가 곳곳에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학천정
학천정
학천정
산고수장 각자
덕행과 지조의 높고 깨끗함을 산의 높음과 강의 긴 흐름에 비유한 뜻이다.
남근흥암,서접화양 각자바위
남근흥암 서접화양 각자
흥암은 경북 상주에 있는 동춘당 송준길을 모신 흥암서원을 말하고
화양은 충북 괴산에 있는 우암 송시열을 모신 화양서원을 의마하며
노론세력이 두 사람을 부각시키고자 의도적으로 각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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