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물

(보물 제1979호) 김정희 필 차호호공

산을 오르다. 2024. 11. 2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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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979호) 김정희 필 차호호공

 

 

 

 

 

 

 

 

요약

김정희 필 「차호호공」은 조선 후기, 김정희가 예서 필법으로 쓴 두 폭의 대련이다. 김정희가 동한 시대 촉 지방의 마애각석에 새겨진 예서의 필법으로 쓴 작품이다. 동인 이근수에게 써 준 글씨로 추정되며, 한예의 고졸함을 추구했던 김정희의 예술적 경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정의

조선 후기, 김정희가 예서 필법으로 쓴 두 폭의 대련.

내용

김정희(, 1786~1856)가 두 폭의 종이 위에 예서()로 쓴 대련()[^주1]이다. 「차호호공()」은 두 폭 중 앞의 두 글자를 조합한 것으로,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 밝은 달을 불러 세 벗을 이루고, 매화와 함께 한 산에 머물기를 좋아하네[ ].”

위의 대련구는 자연과 일체가 되어 한적한 삶을 보내는 처사()의 은일()을 노래한 것이다. 이는 이백()의 시 「월하독작()」에 “술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내 그림자 마주해 세 사람이 되었네[ ].”라는 시구와 북송의 은사() 임포()가 고산()에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은거하여 ‘매처학자()’로 일컬어졌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폭에 ‘동인 인형께서 바로잡아 주시길 바란다[].’라는 방서()를 써 놓았다. ‘동인’은 김정희의 제자 강위()와 친교가 있던 이근수(, 1824~1860)로 추정되고 있다. 두 번째 폭에는 ‘완당이 촉()의 예서 필법으로 쓰다[]’라는 방서를 써놓았다.

‘촉예()’는 동한() 때 촉()에 해당하는 쓰촨성[]과 산시성[西] 일대 지역의 마애각석()에 새겨진 글씨를 가리킨다. 이들 석각 글씨는 필획의 비수()와 율동감이 드러나는 동한 시대 예서의 전형적인 특징과는 달리 필획의 굵기가 거의 일정한 서한 시대 고예()의 특징이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석문송()과 서협송(西)이다. 김정희가 쓴 「차호호공」 대련에도 석문송 등에서 보이는 고박하고 단정한 필법이 잘 구현되어 있다.

형태 및 특징

두 폭의 종이에 쓴 예서 대련이다. 크기는 세로 135.9㎝, 가로 30.2㎝이며, 장황을 포함하면 세로 205.7㎝, 가로 47.6㎝이다. 첫 번째 폭에 ‘동해한구()’라고 새긴 두인()이 찍혀 있고, 작품 말미에 ‘김정희인()’과 ‘완당()’ 인장이 찍혀 있다. 이 작품은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보존되고 있다. 덮개 표면에는 1939년에 오세창()이 예서로 ‘완당선생 작 촉예 대련 신품()’이라 쓰고 작품에 대한 품평을 남겼다.

의의 및 평가

김정희 필 「차호호공」 필적은 동한 시대 촉 지방에 새겨진 마애각석의 고박하고 단정한 필법을 응용한 작품이다. 금석학의 기반 위에 한예()의 고졸()함을 추구했던 김정희의 예술적 경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2018년 4월 20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金正喜 筆 且呼好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

 

 

 

 

 

 

 

 

 

2024.11.19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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