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980호) 김정희 필 침계
요약
김정희 필 「침계」는 김정희가 윤정현의 호 ‘침계’를 가로로 길게 쓴 글씨이다.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쓴 글씨로, 금석학에 정통했던 김정희의 학자로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관지도 함께 써 놓아 윤정현에게 이 글씨를 써서 준 배경을 알 수 있다.
정의
조선 후기, 김정희가 윤정현의 호 ‘침계’를 가로로 길게 쓴 글씨.
제작 배경
윤정현(尹定鉉)이 자신의 호 ‘침계(梣溪)’를 김정희에게 써서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다. 김정희는 예서로 써서 주려고 했으나, ‘침(梣)’에 해당하는 한예(漢隷) 비문 글씨가 없어 들어주질 못했다. 이후 북조(北朝) 금석문에 해서와 예서를 섞어 쓴 사례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에 의거하여 30년이 지난 뒤 부탁을 들어주며 써서 준 글씨이다.
내용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의 호 ‘침계(梣溪)’를 횡액(橫額)으로 써서 준 글씨이다. ‘침(梣)’자는 해서(楷書)로 쓰고 ‘계(溪)’자는 예서(隸書)로 썼다. 대자로 쓴 ‘침계’ 글씨 뒤로는 여덟 줄에 걸친 관지(款識)를 써놓아 이 글씨를 쓰게 된 내력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두 글자를 써 달라는 부탁을 전해 받고 예서로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비(漢碑)에 첫 번째 글자가 없어 함부로 쓰지 못하고 마음에 두고 잊지 않은 지 이제 30년이 되었다. 근래 북조(北朝)의 금석(金石)을 제법 많이 보았는데, 모두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썼다. 수당(隋唐) 이후의 진사왕비(陳思王碑)와 맹법사비(孟法師碑) 등의 여러 비는 그 중에서도 더욱 심한 것이다. 이에 그 뜻을 모방하여 쓴다. 이제야 부탁을 들어주며 오랜 숙원을 속 시원하게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완당이 아울러 쓴다.”
관지 내용을 통해서 윤정현이 부탁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이 글씨를 써서 주었고,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쓴 글씨임을 알 수 있다. 김정희가 1851년(철종 2)에 함경도 북청(北靑)에 유배되었을 때 윤정현이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김정희가 방면되자 같은 해 관찰사직에서 물러난 일이 있다. 또한 북청 유배 시절에 김정희는 윤정현과 함께 황초령신라진흥왕순수비(黃草嶺新羅眞興王巡狩碑) 잔편(殘片)을 수습하고 비각을 세워 보호한 일도 있다. 이러한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김정희가 삼십년이 지나서야 윤정현의 오래된 숙원을 들어주며 이 글씨를 써서 주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형태 및 특징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가로로 길게 쓴 액서(額書)이다. 크기는 세로 42.7㎝, 가로 123.5㎝이다. 이 작품은 나무 상자에 담겨 보존되고 있다. 덮개 표면에는 1934년에 쓴 이한복(李漢福)의 배관기(拜觀記)가 있다.
의의 및 평가
해서와 예서의 필법을 혼합하여 쓴 ‘침계’ 글씨는 윤정현과의 특별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로, 금석학에 정통했던 학자로서 김정희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2018년 4월 20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金正喜 筆 梣溪]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
2024.11.19 촬영
2019.01.05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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