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및여행/중국(북경,서안) 여행사진(2013년)

화청지 (2013.10.10)

산을 오르다. 2013. 10. 1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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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지 (2013.10.10)

 

화청지는 당나라 시대 당현종과 양귀비가 로맨스를 벌였던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온천지이면서 동시에 당나라 황제들의 휴양지이기도 한 화청지는 또한 장개석이 머물던 곳으로 서안사건의 시발점이 기도 하다. 이처럼 고대와 근대에 있어서 두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 화청지이다.

 

화청지는 일종의 황제의 별장이라고 볼 수 있다. 당나라 시절 수도인 장안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화청지는 온천휴양지로 무려 30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산세도 좋고 온천수도 좋아 역대 황제들이 별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특히 당현종 시절에 지은화천궁’은 양귀비와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 화청지는 어떤 곳일까.

 

양귀비는 155cm정도에 약 65kg정도로 뚱뚱한 몸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암내가 나서 화청지를 자주 찾아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불륜인가 로맨스인가

 

화청지의 주인공 양귀비는 어떤 인물일까양귀비는 중국 당나라시대 일곱번째 황제인 현종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원래 현종의 18번째 아들에게 시집을 갔으나 현종이 양귀비를 빼았아 간것이라 한다. 즉 며느리를 아내로 삼은 것이다. 그때 당시 양귀비의 나이가 22세이고, 현종은 56세이었다.

 

그런 양귀비에 대하여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서일까 현종은 양귀비를 5년간 절에 살게 한 후 27살에 궁전으로 데리고 왔는데, 37살에 안록산의 난으로 죽을 때 까지 15년간을 함께 한 것이다.

 

또 양귀비는 현종의 아내이기도 하였지만 안록산의 애인이기도 하였다. 양귀비는 안록산을 수양아들로 삼았는데, 40대의 안록산과 20대의 양귀비가 만나서 또 로맨스를 벌인 것이다.

 

양귀비와 현종과 안록산의 삼각관계 로맨스에 대하여 어떤 이는 불륜의 극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애절한 사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당현종이 모든 정사를 팽개치고 양귀비와 화청지에서 즐긴 것과 양귀비가 죽고 나서 눈물로 낮과 밤을 지세운 현종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한편의 긴시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백거이의 장한가이다.

 

해당탕(海棠湯), 연화탕(蓮華湯), 성진탕(星辰湯)

 

화청지는 양귀비가 목욕하던 곳이다. 그런데 화청지는 최근 발견 되었다고 한다. 1986년 농부가 발견하여 1996년 부터 개방되었는데, 특히 양귀비가 목욕하던 곳을 해당탕(海棠湯)이라 한다. 해당탕은 일종의 양귀비 개인 목욕탕으로서 자그마한데, 수온 약 43도 정도라고 한다.

 

다음으로 황제목욕탕이 있다. 당현종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계단이 1개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양쪽에 기둥을 박을 수 있도록 홈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처마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황제목욕탕을 연화탕(蓮華湯)이라고 한다.

 

황제탕이 하나 더 있다. 당태종인 이세민이 목욕하던 곳이다. 그 곳을 성진탕(星辰湯)이라 하는데,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볼 수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화청지와 장개석

 

화청지는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만 있었던 곳이 아니다. 근대 중국에 있어서 격변기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것은 중국역사의 한 획을 그은 서안사건(西安事件)’이 바로 이곳 화청지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서안사건이란 무엇일까.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서안사건은 1936년 12월 12일 중국 동북지방의 군벌인 장학량이 국민당 총통인 장개석을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의 화청지에서 납치하여 구금하고 항일전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국민당은 중국공산당토벌을 중지하고, 그 대신 일본에 대항하는 국공합작을 추진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동아시아 정세는 급변하였는데, 그 사건의 시발지가 바로 화청지인 것이다.

 

그 때 당시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하였을 때 화청지에서 머물렀는데, 장학량군이체포하러 왔을 때 여산으로 피신하였다가 붙잡혔다고 한다. 지금도 화청지에는 오간청(五間廳)이라 하여 장개석이 사용하던  물품과 침실, 집무실, 회의실, 비서실, 접견실등 다섯가지 방이 고스란히 보존 되어 있다.

 

 

 

화청지 가는길에 본 여산의 모습

 

 

화청지 가는길의 조각상

 

 

화청지 앞의 조형물

 

 

화청궁

 

 

화청궁의 모습

 

 

화청궁

 

 

화청궁

 

 

화청궁

 

 

화청궁

 

 

화청궁

 

 

화청지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연리지(連理枝)가 되어

 

요즘 흔히 하는 말 중에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이 있다. 화청지에서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양귀비와 안록산의 연애는 우리식의 잣대로 본다면 불륜의 극치이다.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불륜도 로맨스가 될 수 있다.

 

당나라시대 시인 백거이는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에 대하여 한이 어린 슬픈사랑가를 지었는데, 그것이 장한가이다. 영어로 A Song of everlasting sorrow 라고 번역된 장한가는 일종의 장편서사시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장한가는 806년에 지어졌다.

 

장한가는 모두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애절함의 극치이다. 양귀비를 잃고 낮과 밤을 쓸쓸함으로 보내는 현종은 죽어서 신선이 되는데, 죽어서 선녀가 된 양귀비와 일년에 한 번 밖에 보지 못한다는 칠월칠석날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애절한 이야기를 시로서 표현한 것이다.

 

 

上天願作比翼鳥 (상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하늘에선 날개를 짝지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게 해주소서

땅에선 두 뿌리 한 나무로 엉긴 연리지가 되자고 언약했지요

(백거이, 장한가)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어 영원한 사랑을 하자고 다짐한 것이다. 여기서 비익조(比翼鳥)는 암 수가 각각 눈 하나와 날개 하나씩만 갖고 있어서 두마리가 한 몸이 되어야만 날아갈 수 있다는 새이고, ‘연리지(連理枝)는 두개의 가지가 서로 얽혀 하나로 된 나무를 말한다.

 

이처럼 세기적인 불륜도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애절한 로맨스로 바뀌게 됨을 알 수 있다.

 

 

장한가

 

 

어탕

 

 

화청궁

 

 

화청궁의 양귀비상

 

 

양귀비

 

 

화청궁의 탑

 

 

귀비지

 

 

해당탕 : 양귀비가 목욕하던 곳

 

 

정원

 

 

연화탕 : 당현종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황제목욕탕

 

 

정원

 

 

연화탕

 

 

성진탕

 

 

화청궁

 

 

귀비지 건물의 모습

 

 

성진탕 내부의 모습 : 당태종 이세민이 목욕하던 곳

 

 

성진탕의 모습

 

 

성진탕 내부의 모습

 

 

화청지의 온천

 

 

월화문

 

 

수령이 400년 된 석류나무

중국에 석류나무는 2300년전 한무제가 실크로드를 통해서 들어왔다.

 

 

의춘각

 

 

비상전

 

 

화청궁

 

 

화청궁

 

 

화청궁

 

 

화청궁

구룡호(九龙湖)
1959년 수리공사를 마치고 복원된 인공호수로 면적은 5,300㎥에 달하고 구룡교(九龙桥)라는 다리를 기준으로 호수를 위, 아래의 2개 호수로 나눈다. 상호(上湖)에는 분수가, 하호(下湖)에는 목욕하는 양귀비상과 용모양 유람선이 있고 호수 동쪽에는 이곳의 뛰어난 경치에 감탄하는 글들이 자연 대리석 위에 조각되어 있다.

 

 

화청궁

 

 

화청궁과 여산

 

 

화청궁

 

 

화청궁

 

 

석탑

 

 

대당화청성

 

 

화청궁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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