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및여행/중국소오대산,젠코우,자금성(2012년)

자금성 3 (2012.09.09)

산을 오르다. 2012. 9. 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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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3 (2012.09.09)

 

건청궁 현판(만주어와 한자 병기)

건청궁(乾请宫) 
내정 제일 궁정이며 명청시대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거나 대신 및 외국 사절을 접견하던 곳이다.

 

 

건청궁 내부(乾请宫内景)와 건청궁보좌(乾请宫宝座)

건청궁 내부 가운데는 보좌가 있고 위에는 ‘정대광명’4글자가 가로 씌여져 있다. 청나라 때 강희 황제 이후 제위한 황제는 생전에 황위 계승자(세자책봉) 이름을 두 통적어 한 통은 이 현판 뒤쪽의 작은 함에 보관하여 두고 다른 하나는 황제가 몸을 지니고 다녔다. 황제가 죽으면 고명 대신이 조각 신하들과 함께 현판 뒤쪽의 함을 열어 황위 승자를 즉위한다.

건청궁보좌 전체를 금으로 만들었고 보석으로 치장하였으며 손잡이와 등 뒤에는 금용이 있고 보좌 등 뒤에는 금색을 칠한 병풍이 있으며 병풍 가운데는 ‘주천, 주경, 주신, 주민’등 4글자가 새겨져 있다.

 

 

곤녕궁(坤 宫)동난각
곤녕궁동난각은 황제의 신혼의 침실로써 지금도 침대와 일용품이 원래대로 놓여져 있다. 침대 커튼에는 귀여운 아이들이 그림을 수 놓아 황제가 결혼한 후 자식 복이 많아 후계자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백자커튼’이라 하였다.

 

 

어화원 가는길의 건물

 

 

어화원 가는길

 

 

어화원 가는길

 

 

어화원 가는길

 

 

어화원의 모습

 

 

어화원의 모습

 

 

어화원의 청동 향로

 

 

어화원의 제갈공명석과 청동조각상

 

 

좌측문양이 제갈공명 자색 바탕에 북두칠성
즉 제갈공명이 북두칠성을 보고 기원하는 모습으로 황제가 좋아했다는 수석

 

 

천일문

 

 

어화원의 향나무 연리지

 

 

어화원의 향나무 연리지

 

 

흠안전

 

 

자금성내에서 성밖을 볼수 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
10m높이로 쌓은 석가산인데 퇴수산이라고도 부른다.
황제와 황후가 석가산위 정자 어경정에서 북경시내를 바라봤다고 한다.
황후가 집을 그리워하는 비빈이나 궁녀들에게 저곳에 올라가 성밖을 바라보라하여 그리움을 달래게 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어경정(御景停)

 

 

어화원의 정자

 

 

어화원의 수석

 

 

어화원의 수석

 

 

어화원의 건물

 

 

어경정

 

 

어화원

 

 

어화원

 

 

순정문

 

 

어화원에서 본 경산공원의 정자 만춘정

경산공원은 고궁(자금성) 북측에 바로 위치한 원, 명, 청나라 3대의 황제의 정원이었다. 명나라 영락 18년 베이징 수도와 황궁 건축 시 원나라 때의 궁정을 철거하면서 쌓인 흙과 자금성 주변의 방어 수로 통자하(筒子河)를 만들면서 파낸 흙을 쌓아 이루어진 45.7m 높이의 인공산. 처음에는 만세산으로 불리었다가 청나라 때 경산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어화원에서 본 경산공원의 모습
1664년 숭정 17년에는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이자성의 농민반란군 공격으로 북경이 함락되자 고궁의 신무문으로 탈출하여 경산 동쪽 기슭에 있는 고목(홰나무)에 목을 매어 33세의 나이로 자결하였다. 문화대혁명 시절 이 고목은 사구(四旧:오래된,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로 지정되어 무참히 잘렸고 1981년 원래 나무가 있던 곳에 다시 고목을 심었다. 1996년 공원에서 150여 그루의 홰나무를 1981년 심었던 나무 주변에 심었으며, 작던 그 홰나무 고목은 나무들 사이에 감춰져 있다.

 

 

자금성(고궁)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신무문(고궁박물관)

 

 

호성강(護城江)에서 본 신무문

 

 

호성강과 자금성내의 건물

 

 

무궤도 전차길과 도로

 

 

무궤도전차

 

 

자금성 북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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