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물

(보물 제1189-2호) 박문수 초상

산을 오르다. 2024. 3. 1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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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189-2호) 박문수 초상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박문수 초상화.

개설

이 작품은 흔히 조선 시대 어사(使)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영성군 박문수( , 1691~1756)의 초상화이다. 박문수는 38세 때인 1728년의 분무공신 녹훈( 錄) 때 분무공신상()을 하사받았으며, 이때 공신상으로 그려진 전신상()과 반신상()이 천안의 후손가에 전해져 1994년에 2점 모두 보물 제1189호로 지정되었다. 박문수 초상화는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189-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박문수 초상(2006)은 반신상으로 전체 크기가 세로 121.4㎝, 가로49.7㎝이며, 그림 부분은 세로 40.2㎝, 가로28.2㎝, 발문() 부분이 세로 41.2㎝, 세로 28.2㎝이다. 이 박문수 반신상은 1품관()이 착용하는 서대()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특징

박문수 초상(2006)[반신상]은 천안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학정금대()를 착용하고 얼굴도 젊은 1728년의 분무공신상과는 달리 1품관()이 착용하는 서대()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728년(영조 4)의 분무공신상보다 후대에 다른 맥락에서 새로 그린 초상화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자료가 같은 분무공신이었던 풍원군 조현명( , 1690~1752)이 1751년에 생존한 분무공신 14명의 반신상을 그려 훈부화상첩()을 만든 뒤 기공각()에 갈무리했는데, 이때 조현명 자신과 영성군 박문수, 언성군 김중만( ), 인평군 이보혁( )은 초상화를 새로 그리고, 나머지 10명은 집에 소장하고 있던 구본()을 이모()했다고 한 『귀록집(鹿)』 권18 「훈부화상첩기()」의 기록이다.

왜냐하면 1751년은 박문수가 61세가 되던 해로 1품관이었기 때문에 이 반신상의 도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751년에 이 박문수상과 함께 그려진 언성군 김중만의 노년 반신상이 현재 후손가에 전해져 보물 제71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크기가 세로 42.5㎝, 가로 29㎝로서 이 작품의 노년 반신상 크기인 세로 40.2㎝, 가로 28.2㎝와 거의 흡사할 뿐만 아니라, 도상과 화법(), 미감() 등에서도 적지 않은 친연성이 느껴지는 사실에서도 이 반신상이 1728년이 아닌 후대에 그려진 것이라는 사실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박문수 초상화는 조선 시대 초상화사()와 공신도상사() 연구에 매우 각별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는 문화재이다.

[朴文秀肖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인용)

 

 

 

 

 

 

2024.02.23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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