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물

(보물 제1618-7호) 국새 칙명지보

산을 오르다. 2022. 11. 2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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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18-7호) 국새 칙명지보

 

 

 

 

 

 

1898년에 제작되어 1910년 한일합병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대한제국의 국새. 2021년 8월 24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국새 「칙명지보」는 1898년 윤3월 19일에 제작되어 1910년 한일합병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대한제국의 국새이다. 1897년 고종(高宗)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의 나라에 걸맞는 새로운 국새 제작을 명하였고, 「칙명지보」는 대한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10점의 국새 중 하나이다. 국새는 책보조성소에서 도제조 심순택의 책임 아래 제작되었으며, 제작된 10점의 국새는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3점),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2점), 「흠문지새(欽文之璽)」, 「대원수보(大元帥寶)」로 총 10점이다.

 

칙명()은 임금의 명령이라는 뜻으로 「칙명지보」는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인 조칙()에 날인할 때 사용되었다. 일례로, 1900년 10월 25일 울릉도 및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한 칙령 제41호에 「칙명지보」가 날인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 국새의 상당수를 약탈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왕실과 관련한 사무 일체를 담당했던 기구인 이왕직에서 「대한국새」, 「황제지보」, 「대원수보」, 「제고지보」, 「칙명지보」, 「칙명지보」 총 6점의 국새를 조선총독부로 인계하였고, 조선총독부는 이를 일왕에게 진상품으로 바쳐 일본 궁내청( : 일본 황실과 관련한 업무 일체를 담당했던 기구)에 보관되었다. 1946년 8월 18일 미군정은 궁내청에 소장되어 있던 대한제국의 국새를 모두 빼앗아 한국에 정식으로 반환하였고, 반환된 국새들은 총무처에서 관리하였으나, 한국전쟁 때에 모두 유실되었다. 그 중 「대원수보」, 「제고지보」, 「칙명지보」는 1954년 6월 경남도청 금고에서 발견하여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국새의 규격과 형식

「칙명지보」는 순은으로 제작한 후 도금하였으며, 높이 8.30cm, 무게 2.74kg이다. 손잡이인 보뉴()아래에 정사각형의 보신()을 접합하여 제작하였다. 보뉴는 용 형태로 제작되었고, 보뉴의 크기는 가로 3.3cm, 세로 9.42cm, 높이 6.2cm이다. 용의 정수리에 점 모양의 무늬가 나있고, 몸 전체는 비늘로 덮혀있다. 머리에는 녹각이 솟아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옆쪽에서 보면 등을 위로 들어 반원을 그리며, 배쪽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끈을 끼울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칙명지보」의 보신()은 가로 9.08cm, 세로 9.12cm, 높이 2.10cm의 정사각형 형태이다. 보신의 인판( : 인쇄하는 데 쓰이는 판)에는 ‘(칙명지보)’라는 글씨가 소전()체로 새겨져 있다.

조선 왕실 국새와의 차이

국새 「칙명지보」는 대한제국의 국새로서 조선 왕실에서 사용했었던 국새들과 여러 면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① 손잡이 모양
중국과 조선은 사대관계에 따라 국새의 손잡이 장식에도 위계를 두었는데, 중국의 황제의 국새의 손잡이는 용 모양의 용뉴()를 쓰고, 조선왕실 국새의 손잡이는 거북 모양의 귀뉴()를 사용하였다. 대한제국 국새 손잡이의 모양이 거북이형태에서 용형태로 변화한 것은, 중국 중심의 사대적 외교관계를 청산하고, 대한제국이 황제국임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② 보문
조선은 명과 청나라에서 '조선국왕지인()'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국새를 받아 사용했다. 「칙명지보」를 비롯한 10점의 대한제국의 국새에서는 '인()'자를 ’새()', '보()'로 대체하였는데, '새()'와 '보()'는 천자만이 쓸 수 있는 글자로, 독립된 주권국가로 전환 하고자 하는 고종의 의지가 담겨 있다.

③ 서체
소전체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문자의 정리 ∙ 통일을 위해 재상인 이사()에게 명하여 만든 글씨체로, 문자가 균일하고 좌우대칭 형태의 글씨이다. 국새의 글씨체를 구첩전에서 소전체로 바뀐 이유는 진시황의 권위와 상징성이 담긴 서체를 차용하여 대한제국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가치 및 의의

국새 「칙명지보」는 이 유물을 제작한 과정이 『대례의궤()』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국새를 제작한 날짜와 제작장인 등 국새 제작의 전말을 알 수 있고, 국새를 실제 사용한 문서들까지 다수 현존하여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예술적으로도 공예기술, 서체, 전각 방면에서도 당대 최고 수준의 문화역량을 담고 있으며 일부 변색되거나 탈색된 부분이 있지만, 제작 당시의 원형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한제국 황실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국새이고,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고종의 황권강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8월 24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國璽 勅命之寶] (두산백과 인용)

 

 

 

 

 

 

 

2024.11.27 촬영

 

 

 

 

 

 

 

 

2022.11.23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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