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지방문화재

영월부 관아(영월 자규루 및 관풍헌) (2020.10.24)

산을 오르다. 2022. 7. 27. 22:30
728x90

영월부 관아(영월 자규루 및 관풍헌) (2020.10.24)

 

 

 

 

 

요약

영월부 관아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시대 영월부 치소에 건축된 관아이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며 1456년(세조 2)에는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이 홍수가 나자 이곳으로 옮겨 거쳐하기도 하였다. 단종이 기거하던 관풍헌은 객사의 동익헌에 해당하며 단종의 승하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가 18세기 말 정조에 의해 중수되었다. 현재는 객사 건물 3동과 자규루만 남아 있다. 2016년 3월 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시대 영월부 치소()에 건축된 관아.

건립 경위

대부분의 읍치 건물의 구성은 지방 수령이 정무를 보는 동헌과 생활하는 내아, 향리 및 육방들이 집무를 보던 작청 등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동헌 가까이에는 객사를 두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오고 가는 사신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변천

현재 영월부 관아는 동헌 영역은 모두 사라지고 객사 영역의 건물들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영월부 관아의 모습은 1791년(정조 15)에 그려진 『월중도()』에 잘 표현되어 있다. 『월중도』는 영월에 있던 단종의 유적지를 그린 것으로 장릉뿐만 아니라 관아를 포함한 주변 시설을 상세하게 그렸다. 기문에는 "읍치에서 장릉까지는 6리이고 사직단은 서쪽으로 2리 거리에 있으며, 향교는 동쪽으로 1리, 창절사는 서북으로 2리, 낙화암은 동으로 2리, 사창은 서남으로 1리에 있고 고을의 호수는 123호"라고 하였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며 1456년(세조 2)에는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이 홍수가 나자 이곳으로 옮겨 거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인 1457년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17세로 승하하였다. 단종이 기거하던 관풍헌은 객사의 동익헌에 해당하며 단종의 승하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가 18세기 말 정조에 의해 중수되었다.

현재 객사 건물은 불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외삼문은 전면의 아스팔트 도로에서 그 위치가 확인되고 있어서 원위치에 복원하지 못하고 안쪽으로 들여 복원하였다. 중문과 부속건물, 담장 및 백운루는 복원하지 못하였다. 관풍헌 동남쪽 모서리에는 자규루(

형태와 특징

『월중도』 중 「관풍헌도」에는 중앙의 정청에 해당되는 부분을 객사라고 기록하였고 동익헌을 관풍루(), 서익헌을 망경헌()이라고 기록하였으며 각각 팔작지붕으로 별동 건물처럼 그렸다. 관풍루 앞에는 문루인 백운루()가 있고 객사와의 사이에는 남북으로 담장이 있어서 별도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객사는 서익헌인 망경헌과 연결되어 있으며 전면으로는 중삼문과 외삼문이 있고 중삼문과 외삼문 영역은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부속건물이 측면에 표현되어 있다.

관풍헌은 객사 건물의 익헌에 해당되지만 단종이 잠시 기거했다는 역사적인 의미도 있고 기거를 위해 일반적인 익헌과 다른 평면구성을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관풍헌도」의 기문에 따르면 "관풍헌은 객관의 동대청으로 5칸이며 전후에 퇴가 있고 분합문이 달려 있으며 중앙에 침방이 있고 대청 동쪽으로는 소루 2칸을 설치했다"고 되어 있다. 최근 발굴을 통해 기록과 같이 복원공사를 진행하였다.

의의 및 평가

영월부 관아는 조선 후기 중수된 이후 현재까지 그 터와 건축물을 유지하고 있으며, 단종의 역사를 품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3월 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寧越府 官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

 

 

 

영월 자규루

 

영월부 관아 외삼문

 

영월부 관아의 은행나무 단풍

 

영월부 관아의 은행나무 단풍

 

영월 관풍헌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전기 영월군수 신숙근이 건립한 누정. 관아건물. 시도유형문화재.

개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자규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마루 팔작지붕건물이고, 관풍헌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이익공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용

자규루는 원래 1428년(세종 10)에 영월군수 신숙근(申叔根)이 창건하여 매죽루(梅竹樓)라고 부르던 건물이다. 단종이 영월군(寧越郡) 남면(南面) 광천리(廣川里)국지산(菊芝山) 밑에 있는 청령포로 유배된 그 해 여름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자 관풍헌(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겼다. 단종은 이 관풍헌에서 지내면서 동쪽에 있는 매죽루에 자주 올라 자규시(子規詩)를 읊어 심정을 토로하였으므로 후인들이 자규루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자규는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 뒤 크게 퇴락하였으므로 1791년(정조 15) 관찰사 윤사국(尹師國)에게 명하여 중수하게 한 뒤, 이복원(李福源)이 지은 누기(樓記)를 윤사국이 쓰고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상량문을 이동욱(李東郁)이 썼다. 이 누기와 상량문의 탑본(搨本)을 모아 꾸민『자규루첩(子規樓帖)』이라는 책자가 전해지고 있다.

관풍헌은 1392년(태조 1)에 건립된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지방 수령들이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건물이다. 치석된 한 단의 장대석으로 된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기둥 위의 공포는 이익공으로 처리하고 전면 3칸에는 사분합(四分閤)의 띠살문을 달았다. 관풍헌 객사 정문을 백운루(白雲樓) 또는 관풍루(觀風樓)라고 부른다. 단종은 1457년 10월 24일 17세의 일기로 관풍헌에서 사사(賜死)되었다.

[子規樓 및 觀風軒]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영월부 관아의 은행나무 단풍

 

관풍헌

 

영월부 관아의 은행나무 단풍과 관풍헌

 

영월부 관아의 은행나무 단풍

 

영월부 관아의 은행나무

 

영월부 관아

 

영월부 관아의 약사전

 

영월부 관아의 은행나무 단풍과 자규루

 

영월부 관아의 모습

 

영월부 관아의 자규루와 관풍헌

 

영월부 관아의 은행나무 단풍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