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공 조광조 묘 및 신도비 (2019.07.02)
정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
개설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를 통해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등용하였고, 정국공신의 훈공을 대폭 삭제하는 등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여 훈구파(勳舊派)의 반발을 샀다.
훈구파인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의 무고로 능주(凌州)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선조(宣祖) 초에 신원(伸寃)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문집으로 『정암집(靜庵集)』이 있다.
위치
조광조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심곡서원 맞은편 응봉산[236m] 산자락의 남동쪽에 자리잡은 한양조씨 세장지의 상부에 안장되어 있다.
변천
조광조의 묘는 돌아간 다음해에 선영이 있는 용인으로 이장되었다. 이장한 뒤 묘역을 조성하고 그의 평생 사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건립하였다.
형태
묘는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증된 이씨(李氏)와의 합장묘이며, 원형의 봉분이다. 봉분 중앙에 묘표와 혼유석·상석·향로석이 있고, 상석 좌우로 문인석·망주석이 각각 한 쌍씩 배치되어 있다.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으로 된 묘표(墓表)는 봉분 중앙에 새워져 있다. 장방형 비좌의 4면에는 국화문 및 안상과 상부에 복련문이 수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백색 대리석으로 된 비신 앞면에 종5열로 묘주인 조광조의 주요 관직과 부인인 정경부인 이씨가 명기되어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소 입구에 세워져 있는데 묘표와 같은 양식이다.
금석문
신도비 앞면 상단에는 전자(篆字)로 “문정공정암조선생신도비명(文貞公靜庵趙先生神道碑銘)”이라 횡서(橫書)했다. 비문은 노수신(盧守愼)이 짓고, 이산해(李山海)가 글씨를 썼으며, 김응남(金應南)이 전액을 썼다. 비의 규모는 총높이 약 311㎝, 비신의 높이 244㎝, 폭 93㎝, 두께 34㎝이다. 신도비는 1585년(선조 18)에 건립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사대부의 묘제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묘소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의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가와 명필이 만든 것으로 금석학적으로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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