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절,암자

고성 건봉사 (2019.06.01)

산을 오르다. 2019. 6. 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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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건봉사 (2019.06.01)



정의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에 있는 절.

내용

6·25전쟁 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520년(법흥왕 7) 아도()가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533년(법흥왕 20) 부속암자인 보림암()과 반야암()을 창건하였다. 758년(경덕왕 17) 발징()이 중건하고 정신()·양순() 등과 염불만일회(:10,000일 동안 염불을 계속하는 모임)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만일회의 효시이다.


여기에 신도 1,820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중 120명은 의복을, 1,700명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인들을 봉양하였다. 782년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하였고, 그 뒤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왕생했다고 한다.


810년(헌덕왕 2) 승전()이 당나라 현수()에게서 화엄학을 배우고 귀국하여 『화엄경』을 강설하였고, 845년(문성왕 7) 백화암()을 창건하였다.


신라 말에 도선()이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형()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라 하였으며, 1358년(공민왕 7) 나옹()이 중건하고 건봉사라 하였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소원을 빌기 위한 지정 사찰)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였다.


이 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되었는데, 성종은 효령대군()·신숙주()·한명회()·조흥수() 등을 파견하여 노비와 소금을 하사하고 사방 10리 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다.


1523년(중종 18) 보림()이 이 절과 보림암을 중수하였고, 1605년(선조 38) 유정()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오면서 불사리와 부처님 치아를 되찾아와서 이 절에 봉안한 뒤 1606년에 중건하였으며, 혜능은 안양암()과 적명암()을 중건하였다.


1673년(현종 14) 수흡()과 도율()이 1,200근의 범종을 주조하여 봉안했고, 1683년(숙종 9) 명성왕후()가 시주한 1,000금으로 불상을 개금()하였다. 이 때 명성왕후는 불장()과 탁의()도 시주하였다.


1708년 능파교()의 비()를 세우고 동대암()을 창건하였으며, 1724년(경종 4) 주지 채보()가 구층탑을 건립하고 부처님의 치아를 봉안하자 명성왕후가 천금을 내렸다.


1726년(영조 2) 석가치상탑비()를 세웠으며, 육송정 홍교( )를 중건하고 비를 세웠다. 1754년 정성왕후()가 상궁 이씨와 안씨를 보내어 석가상을 만들게 하고 팔상전을 세워 원당으로 정하였으며, 8월에는 영조가 숙종의 어제절함도()와 어필서()를 내려 어실각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1799년 강원도 순찰사 남공철()이 유정의 기적비()를 세웠고, 1802년(순조 2) 용허()가 제2회 염불만일회를 열었으며, 1804년 왕비 김씨가 금 1,000금과 오동향로·오동화준()·양산 등을 내려 순조의 성수를 축하했다. 1805년 왕비 김씨는 나라를 위한 재()를 올리고 병풍과 『화엄경』 1부를 하사하였으며, 1828년 유정의 영각()을 지었다.


1851년 유총()이 제3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1865년(고종 2) 화은()을 청하여 강원()을 개설하였는데, 이 때부터 대표적인 강원의 하나로서 많은 강사들을 배출하였다.


1878년 4월 3일 산불이 일어나서 건물 3,183칸이 전소되었는데, 이 때 학림()이 불 속에 뛰어들어 팔상전의 삼존불상과 오동향로·절감도 등을 꺼내었다. 1879년 개운사·중흥사()·봉은사·봉선사()·용주사 등의 도움을 얻어 대웅전·어실각·사성전·명부전·범종각·향로전·보안원·낙서암·백화암·청련암을 중건하였다.


1881년 관준()이 제4회 염불만일회를 설하였고, 1885년 운파()가 모연금으로 대웅전·관음전·명부전·사성전의 문을 개조하고 대웅전 후면을 돌로 쌓았으며, 1886년 명례궁()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1888년 청련암과 대원암이 불탔으며, 1889년 인파()·관준 등이 팔상전·진영각·노전·극락전을 중건하였다.


1891년 신정왕후()의 소상재를 올렸고, 범운()이 부처님 치아를 천안 광덕사에서 받아 와 팔상전에 봉안하였으며, 1894년 관준이 선원()을 만들었다. 1906년 사적비를 세웠고, 어산청범음계()에서 석가영아탑봉안비()를 세웠으며, 봉명학교()도 설립하였다. 1908년 제4회 만일염불회를 회향한 뒤 의중()이 제5회 염불만일회를 열었다.


1911년 조선사찰령에 따라 30본산의 하나가 되었으며, 9개 말사를 관장하게 되었다. 또한 상해에서 신간 대장경 일부를 구입하여 봉안했으며, 1914년 소신대()에 31명의 부도를 세우는 한편 간성군에 포교소를 세웠다.


1917년 팔상전과 낙서암을 중수하였고, 1918년능허()와 경해()가 극락전을 중수하였으며, 운파는 중종() 5좌()와 불기() 30좌를 비치하였다.

1919년 능허가 1,000원을 시주하여 불이문()과 영빈관·별실·문수교를 새로 세우고 산영교()를 고쳤다. 1920년 인천 포교당과 봉림학교()를 세웠으며, 한암()을 청하여 무차선회()를 베풀었다.


1924년 사무소를 중수하고 극락전과 만일회의 부속건물 등을 중건하였으며, 1926년 불교전문강원을 설치하고 공비생() 30명을 양성하였으며, 불상 7위()를 개금하고 장구사()를 세웠으며, 덕성()의 주재로 제5회 만일염불회를 계승하였다.


6·25전쟁 때 이 절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는데, 당시까지 현존하였던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사성전·명부전·독성각·산신각·단하각·진영각·범종각·봉청루·보제루·대지전·동지전·서지전·어실각·어향각·동고·낙서암·극락전·만일원·보안원·선원·원적암·사무소·불이문·여관·장의고·성황당·수침실() 등 총 642칸에 이르렀다.


중요 문화재로는 도금원불()·오동향로·철장()·대종·절감도·차거다반() 등과 불사리탑 등 탑 8기, 부도 48기, 비 31기, 고승 영정 44점 등이 있었다.

또 부속 암자로는 보림암·백화암·봉암암·극락암·백련암·반야암·청련암·대성암·적명암·보리암·보문암·대원암·일출암·안양암·동대암·망해암 등이 있었다.


현재 고성 건봉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고, 6·25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도 능파교와 십바라밀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진 두 개의 돌기둥,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새겨진 돌기둥 등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건봉사 불이문(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



건봉사의 모습



건봉사



건봉사



건봉사



건봉사 대웅전



건봉사 명부전









보물 제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보물 제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보물 제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보물 제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보물 제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보물 제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보물 제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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