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및여행/유럽여행사진(2016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풍경 (2016.06.04)

산을 오르다. 2016. 6. 1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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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풍경 (2016.06.04)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의 지도

 

 

호텔에서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가는 길의 풍경

 

 

호텔에서 올드타운 가는 길의 풍경

 

 

두브로브니크성 민체타요새

 

 

두브로브니크 성을 가기위해 협곡을 지나야 한다.

 

 

 

두브로브니크 성 필레문 앞의 분수대 : 아멜링분수

필레문 앞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멜링(Amerling)의 분수다. 아멜링은 이 분수의 기증자 이름이고, 이 작품은 1900년 조각가 이반 렌디치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작품에서 스토이나(Stojna)가 목신인 사티로스로부터 양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조각 아래로 물고기 입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온다. 그 물은 조각 아래 수조로 흘러든다.

 

 

두브로브니크 성곽의 모습

 

 

두브로브니크 성에서 본 스르지산의 모습

 

 

필레문과 해자다리의 모습

 

 

필레문 입구 다리에서 본 보카르 요새의 모습

 

 

필레문(Gradska Vrata Pile) 의 성 블라이세 조각상

문 위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신인 성인 블라호(Vlaho)가 성을 지켜주고 있다. 블라호 성인은 10세기에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972년 네레트바 계곡을 점령한 베네치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정복하기 위해 그루즈와 로크룸에 닻을 내렸다. 성 스테판 성당의 스토이코 신부가 도시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했고, 그때 블라호 성인이 무리를 이끌고 나타나 베네치아 군대의 전략을 알려주어 그들을 격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블라호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받들게 되었다. 그 후 그들은 2월 3일을 블라호 성인의 날로 정해 축제를 열고 있다. 그러므로 축제의 역사는 천 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축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1190년에 만들어진 양피지 문서에 남아 있다. 그리고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기도를 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성인 블라호를 연호한다.

 

 

필레문을 통과하면서 본 성곽의 모습

 

 

필레문을 통과하면서 본 성곽의 모습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의 모습

프란시스코 수도원은 그 역사가 123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아시시 출신의 프란시스코(1181-1226)가 두브로부니크에 머물며 이 지역 출신의 젊은이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줬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시 외곽에 처음 수도원이 세워졌고, 1317년 현재의 자리에 재건되기 시작했다. 교회, 정원, 도서관, 박물관을 갖춘 복합 수도원 시설이 완성되는 데는 거의 1세기가 걸렸다. 건물의 양식은 로마네스크와 고딕을 결합한 형태로 지어졌다.
이 수도원 역시 1667년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다. 특히 교회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후에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에 비해 수도원 안에 있는 정원과 약국, 도서관, 박물관 등은 과거의 모습을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다. 1317년부터 존재했던 약국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으며, 도서관에는 7만 점의 필사본과 인쇄본이 보관되어 있다. 필사본 중에는 11세기 양피지 문서가 가장 오래되었다. 그리고 가치로 본다면 만 삼천 점에 달하는 음악문고가 가장 중요하다. 박물관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다시 문을 열었다.

 

 

플라차 거리의 수로

 

 

필레문을 통과하면 왼쪽에 나오는 첫번째 성당인 성 사비오르 성당(1520년 첫번째 지진 당시 사람들이 무사히 살아남자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성 사비어 교회는 르네상스 때인 1520년부터 1528년 사이에 지어졌다. 르네상스 양식을 토대로 일부 고딕 양식을 가미했다. 이 교회는 1667년의 지진에도 훼손되지 않아 오리지널 르네상스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성 사비오르 성당의 문양

 

 

플라차 거리와 멀리 종탑의 모습

구시가지의 중심거리 플라차 거리(Placa Street)

두브로브니크가 처음 형성되던 시기인 7세기 경, 플라차 거리는 원래 수송로 역할을 하던 운하였다.그 후 도시가 커지면서 운하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하였으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하여 성을 쌓으면서 수로를 매립하여 도로로 만들었다.플라차 거리는, 구시가지 투어가 시작되는 서쪽의 성문인 필레 게이트(Pile Gate)로 들어서면 성 안의 구시가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동쪽 선착장 앞에 있는 성문까지 이어지는 280m의 거리를 말한다.오랜 역사를 지닌 플라차 거리의 바닥에 깔려있는 화강암 대리석은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반질반질 닳아 있다.플라차 거리 양측으로는 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1층에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상점 등이 들어서 있다.거리 양편에 있는 많은 비좁은 골목 안으로는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는 집들이 빼곡한데, 이곳 구시가지에는 4,0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플라차 거리의 대리석(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이 대리석이 반짝반짝 윤이난다)

292m에 이르는 스트라둔 거리에는 대리석이 깔려 있다. 이 길은 원래 두브로브니크 구도심을 육지와 섬으로 나누는 수로였다고 한다. 11-12세기 경 이 수로를 자갈로 메우고 길을 냈으며, 1667년 지진 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대리석이 깔린 것은 1901년이라고 한다. 스트라둔 거리는 이곳 주민과 관광객들이 하도 많이 밟고 다녀 반질반질하다. 그래서 시인 루코 팔리에타크는 '이 세상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고 보여지는 단 하나의 거리'라고 묘사했다.

 

 

플라차거리 끝에 있는 루자광장의 종탑

 

 

루사광장의 종탑

종탑높이가 35m이며 맨위쪽은 왕관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밑은 아치형이며 그 속에 그리니스라는 이름의 종이 놓여 있다. 지금의 종은 복제품이며 원래의 종은 스폰자궁전 중앙홀에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종탑은 시계탑을 겸하고 있는데 시계는 숫자 대신 태양의 이글거리는 모양과 시계중심 12개가 그려져 있어 시만 나타내니 분은 시의 간격으로 대충 짐작 해야 한다.

1444년 건립 하였고 지진으로 무너졌지만 1928년에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로마식 시간표시와 더불어 태양을 형상화 한 시계다.

 

 

스폰자 궁전 반대편에 위치한 오를란도브 게양대(Orlandov Stup).

올란도 광장에는 올란도(Orlando) 석주가 있다. 석주에 새겨진 인물은 8세기에 살았던 젊은 기사 롤랑(Roland)이다. 전설적인 기사 롤랑은 샤르마뉴 대제 휘하의 군인으로 에스파냐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피레네 산맥에서 죽었다. 그의 무용담은 영웅서사시 <롤랑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이야기가 15세기 이곳 두브로브니크에 전해졌고, 그의 독립과 자유정신이 평가되어 1418년에 롤랑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롤랑의 이탈리아식 표기가 올란도다.
그는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그리고 석주 위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축제 깃발이 걸려 있다. 올란도 석주는 두브로브니크 여름 축제의 시발점으로, 1950년 7월 10일부터 매년 이곳에서 축제가 시작되고 있다.
그는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데, 이 칼은 프랑스 샤를 대제가 하사한 검으로 트로이 장군 헥토르가 사용한 전설의 검인 뒤랑달(듀랜달)이라는 명검이란다. 그리고 석주 위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축제 깃발이 걸려 있다.  올란도의 오른쪽 팔꿈치에서 손까지의 길이를 '두브로브니크의 팔꿈치'라 하여, 길이가 51.2cm인데, 교역의 중심지인 이 곳에서 거래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길이의 기준이라 하며, 올란도 기둥 아래 육각형 받침대 한변의 도 51.2cm라고 한다.  올란도 석주는 두브로브니크 여름 축제의 시발점으로, 1950년 7월 10일부터 매년 이곳에서 축제가 시작되고 있다.          

 

 

성 블라이세 성당의 모습

 

 

성 블라호 교회의 동쪽에는 구 시청이 있다. 구 시청은 종탑에서부터 총독 궁에 이르는 복합건물의 한 가운데 있다. 14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1816년에 불탄 후 1882년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건물 앞에는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가 있고, 현재는 시의회 건물로 사용된다. 건물의 일부는 시민들을 위해 카페와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 시청건물 입구모습

 

 

루사광장에서 본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종탑에서 본 필레문 방향의 플라차 거리

 

 

성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의 모습

 

 

성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의 피에타 상

교회의 정문 위에는 마리아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 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은 15세기 말 페트로비치 형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진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박물관 입구

박물관에는 1391년부터 운영되는 말라 브라체(Mala Brace)라는 약국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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