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 1 (2016.05.27)
[개설]
면적 10만 3,000여평. 사적 제122호로 지정된 창덕궁 안에 있는 조선시대 정원이다. 조선왕궁의 놀이와 잔치 장소로 활용된 대표적인 조원(造苑)유적이다.
[역사적 변천]
1405년(태종 5)창덕궁이 이궁(離宮)으로 창건되고 이듬해인 1406년에는 후원 동북쪽에 해온정(解溫亭)을 짓고 그 앞에 못을 팠으며, 후원 북쪽에는 인소전(仁昭殿)을 지었다. 인소전은 1408년에 문소전(文昭殿)으로 이름을 바뀌었으며 이 해에 태조와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신주를 모셨다.
문소전 동쪽에는 태조를 위한 원찰(願刹)이 있었는데, 1433년(세종 15) 문소전을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7명의 승려가 거주하던 원찰은 철거되었다.
세조가 1459년(세조 5)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후원에 새로운 못을 팠으며 이 때 열무정(閱武亭)이 건립되었다. 열무정의 위치는 현재의 부용지(芙蓉池) 주변으로, 이곳에는 마니정(摩尼井)·파리정(玻璃井)·유리정(琉璃井)·옥정(玉井) 등 네 곳의 샘이 있었다. 지금 이곳에는 사정기비(四井紀碑)가 서 있고, 세조 때 만든 샘 하나가 남아 있다.
1463년창덕궁 후원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1462년에 계획하였던 동쪽 담에 인접된 민가 73區를 철거하고, 다시 북쪽 담에 인접한 민가 58區를 철거하면서 담 밖에 있던 동점(東坫)의 산줄기를 담 안으로 넣기 위하여 100척(尺)을 더 뒤로 물린 다음 담을 쌓게 하였다.
이 때 둘레가 4,000척이었으며 도성(都城) 주위의 주민을 징발하여 담을 쌓았는데, 109가(家)를 1통(統)으로 하여 1통이 25척씩 쌓게 하였으며 모두 160통이 이 일에 징발되었다.
『세조실록』1467년(세조 13) 4월의 기사에는 신모정(新茅亭)이라는 정자가 보이며 1468년 무일전(無逸殿)이 건립되는 등 세조 때에 원유(苑囿)의 시설이 대폭 확장되었다.
연산군은 이 후원에서 여희(女姬)들과 더불어 잔치를 벌이고 새나 짐승을 놓아기르며 사냥을 즐기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1497년에는 사람들이 후원에서 벌어지는 유락(遊樂)을 엿본다고 서쪽 담을 높게 쌓았고, 1503년 동쪽과 서쪽 담 밑에 사는 민가를 모두 헐어냈다. 1504년에는 성균관이 후원에 인접하였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옮기게 했으며, 이듬해에는 경회루(慶會樓)와 같은 서총대(瑞蔥臺)를 만들게 하였는데, 높이가 10여척인 대 위에는 1,000명이 앉을 수 있고 돌난간에는 용을 조각하였다.
이 공사에 감독관이 100명, 일꾼이 수만 명 동원되었다고 한다. 서총대 앞에는 경회루 앞과 같이 큰 못을 조성하였고 군인들로 하여금 양강(兩江)의 배를 끌어다가 못에 띄우게 하였다. 그러나 이 못은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중종이 즉위하면서 철거되고 말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이 후원은 20년간 폐허가 되었다가 1610년 불타 버린 창덕궁을 복구하면서 광해군은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원에 책방(冊房)을 만들고 별전(別殿)과 소정(小亭) 등을 여러 곳에 짓고 기이한 꽃과 이상한 수목, 괴석을 즐겨 그 기묘하고 사치함이 예전에 볼 수 없는 경관이었다 한다. 이때 영화당(暎花堂)이 건립되었다.
1636년(인조 14)에 탄서정(歎逝亭 : 뒤에 逍遙亭으로 개칭)·운영정(雲影亭 : 뒤에 太極亭으로 개칭)·청의정(淸漪亭)을 짓고 옥류천(玉流川)을 가꾸고 어정(御井)을 팠다. 이어 1642년에 관덕정(觀德亭), 1643년에 심추정(深秋亭), 1644년에 육면정(六面亭)인 존덕정(尊德亭), 1645년에 취향정(醉香亭 : 뒤에 喜雨亭으로 개칭), 1646년에 벽하정(碧荷亭 : 뒤에 淸荷閣으로 개칭), 1647년에 취승정(聚勝亭 : 뒤에 樂民亭으로 개칭)·관풍정(觀豐亭)이 건립되었다. 인조가 후원에 정자를 많이 건립한 것은 세자가 북경의 궁관제도를 보고 와서 왕에게 알리자 이를 본뜬 데에 그 이유가 있었다.
1688년(숙종 14)에 청심정(淸心亭), 1691년에 능허정(凌虛亭), 1692년에 애련정(愛蓮亭)을 지었다. 1704년에는 명나라 신종을 봉사(奉祀)하는 대보단을 조성하고 1707년에는 척뇌당(滌惱堂)을 건립하였다.
1777년(정조 1)에 왕의 영정과 글씨, 보책(寶冊), 인장(印章) 등을 두는 규장각(奎章閣)을 짓고 1792년에는 숙종 33년에 건립한 택수재(澤水齋)를 헐고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부용정(芙蓉亭)으로 바꾸었다.
또 정조 연간에는 옛 열무당 터에 왕의 글씨를 보관하는 봉모당(奉謨堂)을 건립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의두합(倚斗閤)을 짓고, 1828년에는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순조에게 존호례를 올리면서 의례를 치르는 장소로 연경당(演慶堂)을 건립하였다. 1921년에는 후원 서북쪽에 선원전(璿源殿)이 건립되었다.
창덕궁 후원의 명칭에 대하여는 역대 왕조실록에 후원·북원·금원(禁苑) 등이 보이는데 후원이라 부른 것이 가장 많다. ‘비원’이란 명칭은 1904년(고종실록 광무 8년 7월 15일)부터 나타난다.
[내용]
이 후원은 북악산의 한 줄기인 매봉을 등지고 자연의 지세에 따라 누정(樓亭)과 연못이 배치되었으며 곳곳에 차고 맑은 샘물이 솟아난다. 후원 서쪽 담 안으로 흐르는 계류(溪流)는 금천교(錦川橋) 밑을 지나 남으로 흐르고 후원 동북쪽 옥류천 물은 동쪽으로 흘러 나간다. 땅 밑에서 솟아나는 샘물들은 반드시 애련지·부용지를 채우고 다시 넘쳐 흘러서 창경궁 춘당지에 들었다가 창경궁 안쪽으로 흐르다 남쪽으로 나간다.
현재 남아 있는 연못으로는 부용정이 있는 부용지·애련정이 있는 애련지·연경당 앞의 장방지(長方池)·몽답정(夢踏亭) 앞의 장방지·존덕정 앞 반월지(半月池)·관람정(觀纜亭) 앞 반도지(半島池)·옥류천 주위의 청의정이 있는 소형의 못·태극정 앞의 소형못 등이 있다.
이들 못 속에는 연꽃을 심고 물고기도 길렀으며, 부용지와 애련지에는 화려한 놀이배도 띄우고 낚시질도 하였다.
못에 물을 넣는 수입구(水入口)는 화강암으로 용두(龍頭)가 조각되어 있다.
1975년에 조사한 거목조사표를 보면 수령(樹齡)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나무는 느티나무 37그루(株), 은행나무 2그루, 회화나무 2그루, 주목(朱木) 10그루, 밤나무 및 측백나무 2그루와 매화나무·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다래나무(천연기념물 제251호)·주엽나무가 각 1그루씩 분포되어 있다.
수령이 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나무는 느티나무·은행나무·다래나무·주엽나무·주목·회화나무·밤나무·향나무·매화나무·엄나무·수양버들·철쭉·참나무 등이다. 그 외의 오래된 나무는 단풍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때독나무·배나무·뽕나무·앵두나무·귀롱나무·개벗나무·작살나무·느릅나무 등이다. 인공적인 관상수는 심지 않았고 나무에 전지(剪枝)를 하지 않았으며, 또 따로 꽃밭도 만들지 않았다.
[특징]
후원의 괴석들은 정자나 건물의 주위 단(段)을 지어 만든 공간에 배치되었다. 괴석의 형태는 기이한 바위이거나 선산(仙山)의 형태로서 수성암이나 현무암의 종류가 많다. 괴석은 대(臺)를 받쳐놓았던 것인데, 대는 화강암으로 사각형·육각형·팔각형·원형 등으로 매우 다양하고, 대석에는 사자 등 동물을 새긴 것과 꽃무늬를 새긴 것이 있다. 연경당 안 마당가에는 수련과 같은 수초(水草)를 길렀던 석조(石槽)가 하나 남아 있다.
후원 안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누각·정자·민가양식 등인데 집모양도 사각형·육각형·팔각형·부채형·다각형 등으로 건립되었고, 특히 정자의 난간·포작(包作)·문살 등에는 기발한 착상과 함께 목조공예의 정교한 솜씨를 다 발휘하였다.
[의의와 평가]
느긋하고 여유 있는 공간이며 스스로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수양지이고 학업의 수련장이기도 한 비원은 우리나라 조원문화(造苑文化)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 정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후원입구
어수문,주합루,서향각의 모습
부용지와 어수문,주합루,서향각
어수문
주합루
부용정
부용정
부용지와 부용정
영화당
영화당 현판
영화당
창덕궁 부용지
사정기비각
부용지,부용정,사정기비각
금마문
기오헌 현판이 붙은 의두합
애련정
애련정
애련정
애련정
불로문
불로문
관람정
관람정과 존덕정
관람정
관람정
관람정
관람정
폄우사
폄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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