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및여행/중국(북경,서안) 여행사진(2013년)

서안 장안성 사진 (2013.10.19)

산을 오르다. 2013. 10. 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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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장안성 사진 (2013.10.19)

 

 

장안성은 동서남북 네개의 문이 있다. 동문은 생필품과 공물이 드나들었고, 서문은 실크로드와 연결되어 서방상인들의 출입구였으며, 남문은 황제궁과 가까운 곳으로 황제만이 출입하였고, 북문은 사절단이 출입하였다,

 

 

방문지인 장안성의 동문은 장락문(長樂門)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성문 위로는 '욱일동승'-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른다.- 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다.

 

 

 

 

장안성은 수나라 때인 582년 성이 처음 세워지고 당나라 때 장안성이란 이름으로 제대로 된 성이 구축되었다. 당나라의 전성기 시절 성의 둘레가 35.5킬로미터, 면적은 84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로 오늘날 시안시의 7.5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성내는 세 부분, 즉 북쪽 중앙부분에는 관료들의 구역을, 남쪽 중앙에는 황제가의 구역을 두었고, 그 외 일반구역으로 나누었었는데 당나라 말기 수도가 낙양으로 옮겨지면서 관료구역과 일반구역은 버려지고 황제가의 구역만 남게 되었고 이 황제가의 구역이 당시에 동북쪽으로 좀 더 확장되어 성이 축조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장안성은 그후 수차례의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명나라 때 와서 주원장에 의해 1370년부터 1378년까지 8년간에 걸쳐 당나라 때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장락문 위에 서 있는 누각은 청나라 때 지어진 건축물로 당나라 때 세워졌던 누각은 명나라를 멸망시킨 원인이 된 이른바 '이자성의 난'때 불타버렸다고 한다. 당시 농민반란군을 이끌고 장안성으로 쳐들어온 이자성이 장락문 편액을 보고 '황제가 오랫동안 즐거우면 백성들은 그만큼 고생을 하기 마련이다'라고 한 말에 장병들이 분노하여 불질렀다고 전해진다.

누각 2층에 '자기동래(紫氣東來)'라는 편액은 '상서로운 붉은 기운이 동쪽에서 온다'라는 뜻이다. 동쪽에 있던 청나라가 하늘의 기운을 받아 중국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뜻이 담겨있다. 청나라때 재건축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12m, 너비는 15m, 4차로 도로만큼 넓다. 수많은 병력이 진을 칠수 있는 공간이다. 동쪽으로 난 성벽의 길이는 2,886m에 이른다.서쪽 성벽은 2,706m, 남쪽은 4,256m, 북쪽은 4,262m, 총 14km에 달한다. 세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장안성 뒤로 고층건물이 늘어서 있다.

 

 

장안성 내와 성외를 구분하는 선

 

 

성내의 고풍스러운 건물

 

 

성벽에 있는 노점상들

 

 

성루

 

 

성루와 성외부의 고층건물

 

 

성벽

 

 

성벽

 

 

장안성

 

 

장안성

 

 

자기동래 현판

 

 

장안성 동문의 종

 

 

장안성 성벽

 

 

장안성루

 

 

장안성을 두르고 있는 해자, 폭이 8m에 이르는 이 해자는 성 둘레 따라 총 연장 13.7km에 이른다.

 

 

욱일동승 현판-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른다-

 

 

장락문과 성루

 

 

장안성

 

 

성루

 

 

성루

 

 

장락문과 성루

 

 

장안성 성루

 

 

장안성 성루

 

 

장락문과 성루

 

 

장락문과 성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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