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사당, 원균묘, 모선제 (2019.04.03)
원균사당, 원균장군묘, 모선제 (2019.04.03)
[원균 사당]
평택 향토유적 제6호.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산 84에 있는 조선시대의 무신 원균(元均)을 모신 사당.
원균(元均)은 조선시대의 무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합포해전·당포해전·당항포해전·율포해전·한산도대첩·안골포해전·부산포해전 등에서 이순신과 함께 일본 수군을 무찔렀다. 이순신이 파직당하자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통制使)가 되었으나 칠천해전에서 전사했다. 1604년 이순신·권율과 함께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책록되어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고 원릉군(原陵君)에 추증되었다.
사당은 그가 전사한 이후 국가에서 사당을 세워 후손에게 제향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건물은 원균장군묘(元均將軍墓, 경기도기념물 제57호) 앞에 있었으나 300여 년이 지나면서 사당에 물이 들고 낡아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뒤 1992년 평택시에서 수리 및 개축하였다. 대지 50여 평에 사당 본채 11평, 외삼문(外三門) 5평 규모의 기와집이다. 매년 음력 7월 1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두산백과 인용)
[원균장군 묘]
정의
임진왜란 때의 장군 원균의 묘소.
개설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마을 뒤편 야산 언덕 위에 위치한다. 1980년 6월 2일에 경기도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원균(元均, 1540~1597)은 임진왜란 때의 장수로, 이순신(李舜臣)과 협력 또는 경쟁하면서 크고 작은 해전에서 승전을 거듭하다가 1597년(선조 30)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에서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권율(權慄), 이순신과 함께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으로 책록되었다.
묘역 규모는 400㎡이다. 묘역은 내리 저수지를 아래로 두고 도일동 마을 뒤쪽 인접한 야산에 잘 조성되어 있다. 봉분을 중심으로 상석(床石)이 있고 그 앞으로 장명등(長明燈)을 배치하였으며 좌우로 망주석(望柱石)과 무인석을 각각 한쌍씩 배치하였다. 석물들은 모두 근래에 후손들에 의해서 마련된 것들이다.
묘비는 상단에 옥개석(屋蓋石)을 두고 비의 전면에는 ‘자헌대부지중추부사삼도통제사증효장의적의협력선무일등공신숭록대부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부사원릉군원균묘배정경부인파평윤씨부좌(資憲大夫知中樞府事三道統制使贈效仗儀迪毅協力宣武一等功臣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原陵君元均墓配貞敬夫人坡平尹氏祔左)’라는 명문이 있으며 뒷면은 앞면의 글을 한글로 옮겨 새겨 놓았다. 묘소 아래로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이 역시 근래에 세운 것으로 왕이 내린 교서(敎書)와 장군의 행적을 국한문 혼용체로 기록하였다.
근래에 와서 새로 마련된 사당(祠堂)은 1991년에 향토유적지 제3호로 지정되었고 1992년에 중건하여 종중(宗中)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1604년(선조 37) 이순신·권율(權慄)과 함께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책록된 사실이 ‘원릉군원균선무공신교지(原陵君元均宣武功臣敎旨)’에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보물 제1131호로 지정되어 문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원균 사당 내삼문
원릉군사우
원릉군사우
원균사당
원균사당
원균묘 가는길
원균묘 가는길
원균 묘
원균묘
원균묘
원균묘
신도비
원균묘
원균묘
내리저수지에서 본 원균묘
원균묘
원균묘
원균묘
모선문
모선제
모선제